겨울바다는 적막했다. 싸늘해진 날씨탓일까, 모든것이 잠들어버린듯 흐름의 끝이 있다.한그루 해송이 사계의 모습을 의연하게 지켜가고 있다.겨울로 가는 길은 길고도 짧다. 자연이 거두고 내린 신비의 섬, 그곳이 지구촌이 아니겠는가.
바다의 중심에는 해송이 방풍 역할을 한다. 온갖 해풍과 그 숱한 세월의 벽을 만들고 지켜왔다.
한국에서는 바닷가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해송이지만 이곳 해변에 상징적인 지표를 알려나가듯 인간의 호위를 받아가듯 사람의 손길이
이곳 바다의 중심부에 옮겨 놓은 듯하다. 동해와 남해를 옮겨 놓은 푸른 색조는 아니지만 한국 서해를 흡사하게 닮았다.
바닷가의 풍경은 따뜻한 커피 한잔이 그립고 카페안에 온기가 그리웠다.오픈을 알리는 카페안도 한가로이 주인을 기다리기에 바쁜 오후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뼛속까지 시려오는 혹한의 겨울 날씨는 아니지만 바닷바람이 매섭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햇살의 온기가 그리운 초겨울의 바닷가는 잔잔한 미소만이 전부였다.
먹구름을 동반한 날씨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한 날씨를 주시했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밴쿠버의 겨울은 설경의 아름다움을 느껴가는 겨울보다 비와의 만남에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된다. 비가 많이 온다는 이유로 얻어진 애칭 레인 쿠버 이곳이 밴쿠버 날씨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겨울의 아쉬움은 만년설이 대신 겨울의 환기를 채워 놓아 간다.
인위적 흔적은 없었다.한그루의 나무가 밀물과 썰물의 흐름데로 떠밀려 바닷가 모래위에 흔적의 고독을 끌어안고 누워있다.생명의 끝에는 바다가 품고 있었다.바다와 산은 수직이다. 바다가 있는 곳엔 항상 산이 바다를 품었다. 바다가 산을 품지 못한 것은 산이 바다 위에 의연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우뚝 서 있다는 논리로 적용된 해답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자연은 그저 주고받음의 가치보다는 공존의 관계가 맞을 듯하다.
바다의 수평선을 가로막고 있는 곳은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 경계선이다.바다를 건너기만 하면 미국이다. 한국과의 경계선은 어디에서 어디까지일까.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머나먼 나라 한국, 체감의 거리는 멀고 먼 나라이지만 마음에 와 닿는 거리는 저 너머 눈으로 확인된 미국보다는 더 가까운 곳이 아닐까 싶다.
빈 의자가 고즈녘한 초겨울의 풍경을 담아간다.주인을 잃은 것들은 비단 벤치뿐이 아니었다. 사람의 발길로부터 소외된 관심 없는 바다는 아녔을까, 자연의 숨소리가 또한 바다를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숨통이 막힐듯한 답답한 도시인들은 바다로 떠났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말없이 건네주는 생각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스스로의 생각에 힘을 얹어주었다.
바다는 동경이었고 쉼이 여유가 공존하는 곳이다.오늘따라 느낌의 바다를 건너지 못했다.겨울바다는 거센 파도의 움직임도 없는 고요한 울부짖음만 남아있다바다의 끝은 없다. 늘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의 간격에 움직임 또한 변함이 없다. 특별히 치장할 것도 없이 보이는 데로 보고 느껴가면 될 자연의 법칙만이 공존할 뿐이다. 남아 있어야 할 자리, 가둬야 할 곳이 따로 필요하지도 않았다. 유유 자작 흐르는 데로 역행할 이유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원칙만이 존재되어 가면 그뿐이다.
TSAWWASSEN MILLS 오랜 시간 바닷가에 머물러 있기엔 추웠다. 또다시 행선지를 돌려 차로 30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대형 아웃렛 매장이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찾아가는 거리를 계산하지 않고 많은 차량이 아웃렛이 있는 이곳을 향해 움직이는 모습이 분주했다. 어떤 것을 사기 위한 목적을 앞세우기보다는 눈으로 즐겨가는 쇼핑 또한 일부분의 휴일 선물과도 같았다.
헐거벗은 가로수가 겨울을 사수한다.나뭇가지에 잎새의 출몰이 있기 전까지는 시작에 불과한 초겨울,봄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아울렛 내부의 모습은 색다르게 우산으로 연출된 또 다른 조형물로 운치를 뿜어가는 결정체이기도 하다.
곰의 출현이다사람들은 곰의 출몰을 목격 순간 경계심부터 가지게 된다. 곰에게는 누가 먼저 공격을 하느냐의 의문점보다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공격이 아닌 보호막의 행동은 아녔을까, 동물의 울부짖음은 공포심이라고 한다. 자신을 지켜가기 위한 처세술쯤으로 생각하는 인간 심리와는 동떨어진 관계일 수도 있다.
만물의 영장도 두려움이 있다. 함께 하지 않는 개인의 힘은 미약하기 때문이다.
코요테 조형물*식육목 개과의 포유류. 코요테라는 이름은 아스텍 어 코요틀(coyotl)에서 유래되었으며, 알래스카에서부터 코스타리카에 이르는 초원에서 발견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코요테의 분포범위의 동쪽 경계는 애팔래치아 산맥이었는데, 20세기 동안 뉴잉글랜드, 뉴욕, 미국의 동부지역까지 서식범위를 넓혔으며, 이전에 늑대가 존재하던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 백과사전 발취)
매장안을 들어서면 눈이 호강한다.보는 것으로도 전부를 얻은듯 눈에 담는 모든것이 내것이 되었다.만져보고 보는 것으로도 쇼핑의 즐거움이다.
조각난 나무위에 놓여진 악세사리의 결집체이다.
Outdoor 매장문밖을 나서면 모두가 자연을 끌어안고 섭렵할 수 있다. 자연이 주는 혜택은 위안이고 여유롭게 쉬어가는 쉼이다. 등산용품을 비롯하여 낚시. 보트 온갖 이름 모를 레포츠 장비까지도 총망라해 집결되어 있다.
매장안에는 인공적으로 문밖의 풍경을 옮겨 놓았다.
삶의 주체가 본인이 아닌 것을 자연생태계 이끼를 보면서 생각하게 된다.인색한 말로 기생하는 수초같은 말을 건내보지만 생명은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지켜나가는 불구의 투지 일것이다.
매장안에 대형 수족관은 또 하나의 볼거리를 선사하지만, 자유의 시간을 찾고 싶은 것은 인간이 아니라 수족관에 갇혀있는 물고기일 것이다.
조화를 이루어낸 자연속에 산 짐승의 모습을 실물과 흡사하게 매장에 옮겨 놓았다사계의 관련됨 없이 만년설 풍경이 또한 거대한 대 자연의 산을 옮겨 놓은 듯하다. 매장이라는 일반적인 통로이기보다는 테마가 준비되어 있는 분위기 연출로 인해 쇼핑은 이채로운 효과를 느껴가면서 피로감 없이 흥미 있는 시간을 가져갈 수 있었다.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듯 매장안에는 자연의 날개를 달았다.날을수 있는 조류까지 그리고. 하늘까지도 매장안에 옮겨 놓았다.조화를 이루어 놓은 지구촌에는 없는 것 없이 많은 생명체가 존재되어가고 인간은 자연의 호위를 받아가듯 지배된 인류의 모든 생물체를 품었다.
하지만, 하늘을 날수 없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어느 날은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고 싶었고
또 어떤 날은 구름을 타고 하늘이 맞닿는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싶었던 상상의 시기도 있었다.
입체의 효과는 사람의 눈에 분별력을 떨어뜨렸다.살아 움직이는듯한 묘사는 좀더 가까이 다가설때 비로소 사슴의 모습이 진실과 거짓인지의 차이를 좁혀갈수 있었다
아웃도어 매장안은 겨울철임에도 분주하기만 하다.겨울로 떠나는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연을 닮아가는 것일까 발걸음이 여유롭다.12월은 늘 가는 세월을 즉감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캐럴송이 송별가가 되어버린 듯한 한 해의 마지막 달의 아쉬움의 포옹,
휴일의 풍경은 저마다 같을 수 없듯이 지나간 과거의 추억 또한 다를 것이다. 한 해의 끝자락은 숙연해진다. 어쩌면. 스스로 한해를 심판대 위에 올려놓고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는지도 모른다. 미진했던 것에 대해 질책은 새로운 새해의 다짐이었고 자신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좀 더 잘해 보고 싶었던 아쉬운 욕심의 부활은 아녔을까,
미련은 언제나 남아지는 것.
오늘도 얼마 남지 않은 또 다른 휴일은 내게 관대했던 하루는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