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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Apr 05. 2020

봄을 찾는 사람들

GODEN EARS(골든 이어스 공원 )

봄의 시작은 늘 그래 왔다. 새가 울고 산과 들판에 꽃이 피면 당연히 봄이 왔다는 기억만을 안고 의심 없이 봄을 기다려고 또 맞이해 왔다. 4월 초순인데 아직도 바깥공기가 차갑다. 예년 같으면 온화한 햇살의 움직임과 함께 봄을 맞이했을 시간에 영원히 겨울 속에 멈추어서 있는 것은 아닐까, 봄의 지각변동마저 우리에게 혼돈의 시간을 가져다주는 것 혹시,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은 아닐까, 의심을 돌려본다. 아니겠지, 어쩌다 늦어진 계절적인 게으름일 것이다.


봄의 시작 한편에 설렘이 었고 꿈과 희망을 담아가는 낯설지 않은 계절이라는 포근함이 있었다.


울창한 숲 사이로 뻗은 웅장한 나무는 팔방미인을 닮았고, 하늘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나뭇가지는 힘없이 이끼에게 삶의 터전을 내어주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인 양 하늘을 호령하는 나무 끝만 올려다 보고 나는 환호했다. 나뭇가지의 고통은 고통의 번뇌가 아니라 생의 법칙에 순응해 나가려는 자연의 지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꾸짖어 본다.

"산은 산이여. 물은 물이다"라는 말처럼 산이기 때문에 산으로서의 느낌을 받아 드리고 포용하면 될 텐데 오늘은 생각이 깊었나 보다.


만한 산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좌측 경계선을 중심으로 길게 펼쳐진 계곡이 그림자처럼 걸음의 보폭을 따라잡는다. 보고 느끼는 눈의 호사만으로 지친 심신과 몸이 자유를 얻었다.


갑작스럽게 검은 구름반란이 시작되, 봄이 오는 길목 비바람의 숨통 사이로 겨울의 모습이 쏟아져 내려앉는다. 간헐적인 눈이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측 야영장으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바리케이드가 굳게 내려져있다. COVID-19로 인해 야영장을 사용할 수 없다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끝내는 자연의 영역마저 아사가 버린 느낌이다.


"준우 아빠! 코로나 바이러스 말인데요 혹시 지구를 잠시 정화시키려고 찾아온 것 아닐까요, 온갖 매연과 쓰레기로 지구가 홍역을 겪고 있는데 쉬어야 할 시간도 필요하고..."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왠지 설득력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산을 어느 정도 올라왔을까,

돌탑과 돌무덤 중간 정도를 닮아 있는 형태의 형상목격할 수가 있다. 무속신앙에서나 접목시켜 그 의미를 부여했었던 우리의 전통문화로만 인식했는데 여전히 국경 초월한 내세의 바람이 이국땅에도 놓여 있었다.


뿌리가 뽑힌 채로 쓰러져 있는 나무를 흔하게 목격할 수가 있다. 깊숙이 뿌리내리지 못한 나무의 일생은 결국 비바람에 이겨내지 못하고 고사( 枯死)된 사연이다.

고목나무

나무로써의 생명력을 잃은 지 오랜 되었다. 밑동은 묵묵히 기나긴 세월의 흔적 앞에 묻혀 말문이 닫혀 있다. 지구가 생겨난 이후 세월의 크기를 가눔 할 수 있는 평가의 잣대 일지도 모른다.


멀리서 바라본 시선은 곰의 형상으로 착각했다.

선득했다. 눈앞에서 나무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긴장되어있던 마음에 평온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잠시 곰의 형체로 착각했던 물체의 주인공은 계곡 물에 씻겨 내려온  나뭇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주차장을 떠난 지 40분가량 지난 시간이다. 물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작은 폭포의 호령이다. 웅장하지는 않았지만 장엄했다. 녹색 물감을 뿌려 놓은 듯한 에메랄드(Emerald) 빛 물결의 흐름이 이채로웠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하산하는 길목에는 먹구름이 거치고 하늘 사이로 온화한 햇살이 비집고 내려왔다. 봄의 하늘보다 짙은 청명한 가을 하늘을 닮았다. 아직 닮아 있는 봄을 찾지 못했을까, 진통의 시간만큼 기다림의 바람 끝에 담아 갈 수 있는 미소의 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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