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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Jul 10. 2020

신과 함께라면 "공소권 있음"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박원순 시장이 자살했다. 생각지 못한 비보이다. 자살의 의미는 삶을 밀쳐낸 반항이란 표현이 옳은  다. 그는 시민운동가에서 3선에 성공한 시장이자 여권에 대선주자였. 그것이 그의 죽음 앞에 붙어진 수식어이다. 죽음을 알리는 머리기사에는 여러 형태의 말들 달려 있었다. 그중 "성추행 공소권 없음"수사 종결이라는 기사 내용 앞에 순간 많은 생각으로 멈칫한다. 뭔가 형용할 수 없는 표현의 늪에 빠졌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미 죽은 자에게 죄를 묻지 않겠다는 의미가 있겠지만, 나에게는 와 닿는 느낌은 달랐다.


신과 함께라는 영화를 상영한 기억이 있다. 영화를 보면서 저승에 염라대왕 혼자만 통치자로 굴림할 것이라는 보편적인 생각을 깼다. 영화에는 다양한 신(神)들이 망자의 다양한 죄를 심판하고 있었다. 허구성 내용임을 인정하면서도 혹시나 사후 세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호기심으로 발전해 갔다. 영화 내용이 사실이라면 제일 먼저 서둘러 주문을 외워야 할 것이 있었다.  "과거를 반성하고, 욕심을 버리고 잘살아야겠다. 배려심을 가지고 선하게 살아야겠다"라는 주문이다. 상황의 전개에서 이보다 현명한 주문은 없을 것이다.


영화의 내용은 "인간의 삶이 죽음으로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사후에도 연속(連續)한다"불교의 내세관(來世觀)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불교뿐 아니라 많은 종교가 인간의 삶과 죽음을 연관성을 개입시켜 사후에도 불사적인 영혼이 있음을 끊임없이 재생시켜 가고 있다. 물론, 각자의 믿음의 근거가 선행되어야 가능한 것들이다. 종교의 교리를 바탕으로 믿음을 전개해 간다면 "공소권 없음"은 무효가 된다. 공소권을 저승 염라대왕에게 위임해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기 때문에 공소권 없음은 위헌이다. 


그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의아스러움이 생겨난다. 물론 유언장 내용밝혀지는 대로 죽음을 선택해야 했던 이유에 대해 알 수는 있겠지만, 시각에서는 성추행으로 인한 죽음을 추측하고 있다. 단지 죽음으로서 형벌을 면하고자  어리석게 극단적인 자살을 택했다면 상식적으로 이해 불가한 상태이다. 공인으로서 정치인으로서 감내해야 할 또 다른 무거운 마음이 존재되어 있지는 않았을까, 그는 이승에서 죽음으로 "공소권 없음"으로 죄를 면했지만 끝내 아름다운 세상과의 이별은 하지 못했다.


저승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름을 남기기 위한 명예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만이라도 각자가 서로를 존중해주고 믿어주는 믿음의 관계가 중요한 것은 아닐까 싶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부디 편안히 영면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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