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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Jun 12. 2020

가끔은 삶이 그래 보였다

잘 살아간다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것

생각이 멈추었다. 듣고 말하는 것 마저 닫혔다.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는 느낌이다. 무감에서 오는 게으름은 아닐까, 잠은 쏟아지는데 잠을 이룰 수 없다. 불면증도 아닌데 눈을 감으면 잠들 것 같지 않은 믿음의 부재가 있다.

늘 반복되는 일상은 식상하고, 생리적이고 본능적인 것마저 부담스럽다. 홀로이고 싶어 하는 행동이 커져간다. 누군가 섭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부담스럽고, 웃고 넘길 일도 예민하게 짜증이 섞여간다. 설렘의 에너지는 소진되었다. 눈을 뜨면 어제와 다를 것 없을 하루를 먼저 생각해 낸다. 하루가 하는 일 없이 짧다. 누군가는 바빠서 하루가 짧은 느낌이었다면 또 다른 누군가는 하루 중에 찾아낼 무엇인가를 얻지 못한 두려움에 하루가 짧았다.

살아가는 방식이 어쩌면 단순하다. 생각의 차이가 동떨어진 것이 문제이다. 의식 없는 생각일지라도 늘 자신의 생각 끝이 기준이 되어갔다. 시기와 질투의 이기심 때문일까, 진실과 타협하려 하는 믿음이 이미 깨져버렸다. 모든 것이 모순이고 의심이었다.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갈수록 어렵다. 정직이 사라졌다. 모두의 세상은 모두의 것이 아닌 것 같다.


내가 나를 알지 못할 때가 많다.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모든 관심마저도 비켜가고, 즉흥적으로 판단하는 순간일 때가 많았다. 가끔은 되돌아보고 싶은 추억쯤으로 느껴야 할 과거의 행적 앞에서도 여전히 내려놓지 못한 미련은 욕심만을 품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후회 없이 잘 사는 것일까, 늘 해답은 정해져 있어도 실천하지 못한 대가는 오답뿐이다. 남들만큼은 살아야 한다는 질투와 시기가 마음의 여유를 가져오지 못했다. 욕심은 물러서거나 멈추어서는 일이 없다. 늘 무한궤도를 돌고 있다, 한계점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때론 기다려줄 만도 한 넉넉한 인정도 없다.

욕심은 삶에 섭이 심하다. 삶 중심에 경쟁 구도가 있때문일 것이다. 최소한 남들처럼 비슷하거나 조금은 월등해야 하는 의식된 부담감 때문인지 모른다. 영원할 것 같은 미래를 위한 집착은 생애 마지막 같은 오늘을 살아내지 못했다. 결국은 내려놓을 수도 있을법한 쓸데없는 미련이 욕심을 움켜쥐었다. 세상 누구나 그랬을까, 사후 챙겨갈 것도 아닌 욕심은 버리는 것 없이 채워가는 일에 급급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살아가는 것일까의 해답은 없다. 잘살았다고 해도 뒤돌아 보면 늘 후회와 미련은 남아 있다. 버려야 될 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잘살고 있다는 느낌은 단순하게 각자의 마음속에서 찾아야 할 일인지 모른다. 비우고 채워가는 일은 역행할 수 없는 지혜이고 법칙인데 늘 비우는 일 없이 채우려 하는 일에만 답습하고 있다. 적당히 비우고 적당히 채우는 단순한 반복의 과정이 잘 살아가는 방법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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