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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Aug 16. 2020

새벽의 공상

세월은 가고 오는 것

새벽부터 까마귀 카악 카악 울어 댄다. 

별다른 높낮이가 없는 울음소리 같아 보였다. 

새벽의 진통을 느꼈을까.

아니면, 동이 트는 새벽 탄성쯤으로 생각하면 좋을 듯한데, 어렴풋이 막연한 짐작은 해보지만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까마귀 울음소리가 오늘만은 아니었는데 왠지 모를 감정의 동정심을 품게 다.

나이가 먹어가니 새벽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일상이다. 요즘은 나이 탓에 괜한 구박만 늘어간다.
내 탓보다는 습관적으로 남에 탓으로 돌려보냈다.

갈수록 분별력이 흐려진 탓은 아닐까,


생각이 많아서일까, 아직도 떠나보내지 못한 미련이 남아 있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세월의 잔재를 움켜쥐고 사는 욕심이 문제가 되어갔던 것 같다. 때론 가볍게 다가서는 것 마저도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 지나친 오지랖 때문인 듯싶다.


 이상의 자유는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가끔은 앞선다. 그렇다면 한 번쯤은 자유에 날개를 달아볼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된다. 높고 멀리 나는 새의 움직임보다는 좀 더 가까이에서 옮겨 볼 수 있는 날개의 지혜를 생각해 내었다.

기억의 부재가 때론 원망스럽다. 망각할만한 의식은 여전히 뚜렷하고 기억해야 할 일들은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날이 다반사이다.


살다 보니 세월의 깊이쯤은 있을법한데 겨우 무릎 사이도 안 되는 깊이를 힘겹게 넘나 든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치의 의구심은 없었다. 그동안 시간 속에 사는 것이 인생이라 하여  별 저항감 없이 받아 드리고 살아왔다. 시간이 빠르거나 느린 것에 관계없이 따지거나  묻는 절차 없이 떠나보냈다. 변화에 무뎌진 의식 때문이었을까, 이제 돌아와 세월을 바라보니 가는 흐름이 빨라 따라잡을 수 없는 야속함이 은근히 질투가 되어간다.

세월은 가고 추억은 쌓여가는 것, 감정으로 포장하고 추억의 되새김으로 위안을 삼았다.

과거는 사소하고 별거 아닌 것에 집착으로 여유를 얻어내지 못한 시간을 보내어 왔다. 보는 것만으로도 부족하여 만져보고 확인의 절차가 따라다녔다. 일상은 소유의 욕심이 강한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만은 평범한 듯 살아보자, 늘 주문을 외워보았지만 하루를 도둑 맞은 기분이다.

얻는 것에 익숙했고 주는 것에 인색했다. 원칙은 대가 없이 그냥 내려놓는 법은 없었다. 삶의 무게가 비만이다. 무게를 내려놓는 일을 찾아야겠다.

아직도 여름이 한창인데 계절적 움직임이 성급한 까닭일까, 새벽 기운이 차갑다. 새벽을 깨운 까마귀 울음소리가 내 인생에 울음소리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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