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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Jan 28. 2021

80대 할머니가 매일 담배꽁초를 청소합니다

어떻습니까? 아름다워 보이십니까?

서울 관악구 주택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에 80세가 훨씬 넘어 보이시는 할머니가 살고 계신다. 반지층과 1층에는 세입자가 살고 있고 2층에는 할머니 혼자서 생활하고 계시고 있다. 할머니를 종종 뵐 때마다 평상시 차림의 단정한 모시옷을 즐겨 입으셨다. 안경을 끼신 모습과 깔끔해 보이시는 전체적인 모습에서의 느낌은 온화함 쪽보다는 까칠해 보이는 쪽에 가까웠다. 그런 할머니 집 담벼락에 어느 날 난데없이 경고문(?) 붙었다.

담벼락에 붙은 경고문
"알립니다.
80대 할머니가 매일 담배꽁초를 청소합니다.
어떻습니까?
아름다워 보이십니까?
CCTV라도 달아야 되겠습니다"

담벼락에 붙은 글이 호소력이 담긴 호소문 같기도 하고 달리 생각하면 경고문 같기도 하다. 옆집에서 가끔 지켜본 나로서는 할머니의 성품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1차적인 경고성 글이 맞을 법하다. 어느 집 담벼락에는 노상 방뇨 금지라는 문구와 함께 예리하고 커다랗게 생긴 가위 그림을 그려 놓은 웃지 못할 표지판과 비교한다면 결코 지나친 행동은 아니다. 어쩌면 정당한 행사를 하고 계신 것일 수도 있다.


벽에 붙은 글을 보는 순간 의도와는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에 사진을 담고 있었다. 순간, 어디선가 할머니가 불쑥 나타나셨다. "젊은 양반 사진은 찍는데요" 할머니는 사진을 찍는 것이 불쾌하셨는지 짜증스러운 어투를 담아 말씀을 하셨다. 순간 "할머니가 쓰신 글이 좋아서요" 얼떨결에 생각 없이 뜻하지 않은 변명을 하고 말았다. 남에 물건을 훔치다가 들킨 사람의 변명과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는 집안에서도 흡연이 가능했던 시대가 있었다. 심지어는 대중들이 이용하는 공공장소는 물론 달리는 버스 안에서도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는 것이 허용되었던 시절이다. 심지어는 차 안에 재떨이가 설치되어 있어 길거리에 떨어진 꽁초는 이외로 찾아보기 쉽지는 않았다. 지금에 생각해보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과 다를 것 없는 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할머니는 순간적으로 화를 내신 것에 대해 미안하셨던 대화를 핑계 삼아 푸념을 늘어놓으시기 시작하셨다."도대체 어떤 썩을 놈이 매일 같이 집 앞에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버리고 있네요. 내일부터는 청소도 안 하고 그냥 내버려  보려고요. 썩을 놈"

할머니의 목소리가 또다시 격양되어 폭발 하기 일보 직전이다. "담배꽁초 종류가 딱 한 가지인데 어느 놈에 단독 소행인 것 같은데 잡을 수가 없어요, 어떤 놈인지 잡고 나면 가만히 안 둘 거예요" 할머니가 수배하는 주범은 한 사람으로 압축되어 있었다.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어떤 놈이 누구인지를 나는 이미 몇 달 전부터 알고 있었다. 주범이 할머니 안테나에 잡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너무나  알고 있었다. 


세상에는 넘쳐나지 않아도 될 것 중 하나가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나는 것이 쓰레기이다. 도심가 주택을 중심으로 정처 없이 떠도는 쓰레기와의 전쟁은 휴전이나 동맹도 없다.


출근을 하면서 할머니 담벼락 밑을 유심히 살펴보았다.주범의 양심이 통했던 것일까, 더는 담배꽁초가 눈에 띄지 않았다. 아마도 할머니의 경고성 표지가 통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할머니가 찾지 못했던 주범은 바로 새벽 손님이었다. 이른 새벽 시간대에 주로 흡연을 하는 상태이다 보니 누구의 소행인지를 할머니는 찾아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할머니 이제는 굳이 돈을 드려서 CCTV을 설치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혼잣말로 할머니 집 담벼락을 돌아 전철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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