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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Sep 05. 2021

잃어버린 아내의 이름을 찾습니다

아내의 이름을 되돌려 주세요

여성의 결혼을 출가(出家)라고 말을 한다. 출가(出家)라는 의미는 집을 떠났다는 이야기다. 참고적으로 스님이 불교에 입문하는 일 또한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출가라는 제도 이후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 본인의 이름 대신 자녀의 이름으로 엄마의 호칭이 바뀌어 간 것이다.


 "출가외인(出家外人)"이라는 말이 한편으로는 여성들에게는 소외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말임에 분명하다. 출가 후 주변 상황 설정이 바뀌어 전해지는 것들 또한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신의 집까지도 친정집으로 변신했고, 가정 내에서 누렸던 지위마저 출가와 함께 떠나 버렸다. 


여성에게 친정은 출가라는 제도에 떠 밀려 시간의 텀은 언제부턴가 낯설게 느껴져 갔다. 아내는 계획에도 없던 친정집에 다녀오겠다고 한다. 친정집 문턱이 높고 거리감이 생겨 난 이유 때문일까, 아내는 친정 방문을 조심스럽게 꺼내었다. 남편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거리에 있음에도 마음의 거리가 멀어 보였는지 모른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이틀 동안 먹을 음식과 간식 등을 챙겨 놓고 분주히 가방을 챙겨 처가로 떠났다. 아내의 부재가 얼마나 큰 공백이 될지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아내 또한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영역의 범위를 익히 알고 있는 까닭에 친정으로 향한 마음의 무게가 한층 더 무거웠을 것이다.


처가에 머물러 있는 하루 동안 아내는 가족이 미덥지 않았던 것 같다. 수시로 전화를 걸어 평범한 일상이 되어가는 동선까지도 밀하게 살펴 갔다.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다 늦은 저녁 시간 아내가 처가에서 돌아왔다. 집에서 가져갔던 가방 부피의 배가 되는 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가방을 여는 순간 온갖 것들로 풍성하다. 백년손님 사위를 위한 장모님의 극진한 배려도 묻어 있었다.


과거에는 딸을 출가시키면서 "얘야 시집가는 순간 너는 시댁 귀신이 되어야 한다"했던 친정어머니의 볼멘소리가 있었다. 지금 상황과는 대립되는 이야기이다. 흔히 TV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현대인과 동떨어진 고전적인 시대극 대사와 다를 것이 없다. 과거의 전통적인 관습의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결국 관습으로 인해 출가한 여인의 친정집 문턱만 높여 놓았다.


시대가 변해도 남자 몸에서 산모의 진통을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지구 상에 남녀 역할을 구분 짓는 관행은 항상 시대적 착오의 시간을 가져갈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류의 암수라는 종속적인 남녀 관계라는 것이 아마도 불변 법칙일 수도 있다.


오늘도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아내의 빠른 손놀림을 평상시처럼 생각 없이 소파에 앉아 바라보고 있다. 부엌은 늘  아내만의 전유물이라는 당연한 생각의 오류 때문인지 모른다. 아내의 부엌에서 정성스럽게 빚어낸 음식은 가정의 비타민과 같았다. 가정 내에 행복의 수칙 또한 아내의 섬세한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할 것이다.


식사 후 설거지는 남편의 배려가 묻어있어야 아내가 행복하다. 도와준다는 개념보다는 함께 한다는 의식 전환팩트인 셈이다. 남편의 우직하고 두툼한 손은 고무장갑을 끼우지 않고도 커다란 접시까지도 한 손으로 닦아 가기엔 힘의 크기는 무리가 없다.

부엌 뒷정리가 마무리되고 순간, 아내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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