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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Nov 05. 2021

80세 노인분들에게도 장모님은 젊은이라 부르셨다

자신의 나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장모님은 올해 구순(九旬) 맞이하고 계신다. 36세 되던 해 장모님은 늦둥이 막내딸인 아내를 낳으셨다. 아내와 나는 두 가지 닮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 첫 번째가 늦둥이라는 점이고 번째는 막내라는 점이다. 


아내는 주일이면 아침 일찍 오빠 집을 들려 거동 불편하신 장모님을 모시고 성당을 가는 것이 아내의 몫이자 의무이다. 일주일을 기다려 오신 장모님에게 성당은 유일한 낙이자 취미와 같으셨다. 성당 안을 들어서면 백세 인생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된다. 7.80대 정도 연세가 있어 보이시는 분들이 일찍이 자리를 잡고 미사 시간을 기다리고 계셨다. 휴일에 대부분 달콤한 늦잠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탓일까. 아침잠이 없으신 노인분들이 유난히도 눈에 많이 띄는 이유이다.


장모님은 오랜 기간 같은 성당을 다니신 인연으로 몇몇 분들과 짧게나마 담소와 안부 정도 나누실 분들이 생겨 나다. 성당 안에서는 친분이 없으신 분들에게는 세례명을 알지 못해 자매님이라는 호칭을 대신 불러 주시기도 하셨지만, 무의식적으로 장모님보다 연배가 작아 보이신다고 판단이 되시면 거침없이 80세가 넘으신 노인분들에게도  "저기 젊은 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셨서 상대를 부르셨다. 그러한 장모님의 호칭에 잠시 웃음을 참아내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장모님은 가정에서도 특별한 애정과 관심이 많으신 분이다. 옛말에 부모는 자식이 환갑(還甲)되어도 어린애 취급을 한다는 말이 있다. 가족 식탁에 며느리는 물론 손주들이 있어도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70세가 다 되어가는 아들 밥그릇에 손수 반찬을 얹어 주시는 것도 모자라 손으로 반찬을 입으로 가져다주시기 까지 하셨다. 물론 사위에게도 더 할 나름 없이 잘해 주시고 인정 많은 분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는 있지만, 아들에게 하시는 행동에 질투가 생겨난 까닭일까, 사위 사랑은 장모님이라는 고정관념이 서운함과 함께 깨져가는 순간을 스스로 경험한다.


지금 난 50대의 마지막 길을 걷고 있다. 결국엔 나이에 민감한 탓일까, 바락까지는 아니겠지만 어쩌면 발버둥이 맞을 것이다. 한 살이라도 낮추어 보려고 실제 나이보다 호적의 나이로 한 살을 줄여 살기로 했다. 결국엔 덤으로 1년을 더 얻어 50대 나이라는 범주안에 머물러 살고 있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지극히 정성적인 억지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지금 와 거슬러 40대 때 과정을 생각을 해보게 된다. 50대를 준비했던 그때와 별 반 생각의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60대를 바라보는 생각은 달랐다. 60대에 진입을 하면 갑자기 다 늙은 할아버지로 변신할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었을 때"라고 누군가가 그토록 절규하듯이 남긴 말뜻을  이제는 이해할 것 같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 자신이 늦었다고 말을 하지 않았다. 한때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이젠 늦어버린 것이라는 절망감과 함께 강한 부정으로 세월을 밀쳐 버렸었다. 가끔은 지인들 앞에서도 나이에 대한 반응이 민감하게 습관처럼 찾아올 때가 있다. 그때마다 주변에서 서슴지 않고 "아직도 젊었으셨습니다"라든가. "아직도 한참 나이십니다" 따위의 말로 위로를 해주었다. 겉으로는 웃어 보였지만 뒤돌아서면 상대의 위로의 말에 의심이 가졌다. 


어렸을 때 귀에 따지가 생길 정도로 부모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위를 쳐다보지 말고 아래를 라." 그 말인 즉 늘 낮춤의 겸허한 리를 가르치신 소중한 말씀이셨다고 믿었다. 나이도 마찬가지다. 때론 위를 쳐다봐야 내 마음이 편해 올 때가 있었다. 세상은 때론 거꾸로 가는 세상도 있다는 것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볼 때마다 나는 절대 늙지 않을 것이라는 억지스러운 굳은 믿음을 가지고 살았다. 그 믿음이 오십을 훌쩍 넘겨 버리고 늦은 감이 있는 60세가 다 되어갈 때쯤 믿음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나는 또 한 번의 사춘기 같은 홍역을 치렀는지 모른다.


"지금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에 맞추어 열광적 몸놀림의 율동으로 운동을 하고 계신 노인분들의 모습가끔 목격할 때가 있었다. 그때는 노래 가사부터가 왜 그리 유치해 보였는지 모르겠다.


아직 오십의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나이가 많이 들었다고 생각했던 불과 몇 시간 전 생각이 요술의 마법에서 풀려가듯 순간 오십이라는 말만으로도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아마도 내 나이를 인정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마음을 담고 장모님 마음속을 향해 본다. 80대의 노인분들에게 젊은이라고 불렀던 이유가 보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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