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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Feb 15. 2022

 사랑의 묘약에는 초콜릿이 있다

세계 공통의 연인들에게 아름다운 날 Valentine Day  

부근에 쉐라톤 호텔이 있다. 주변을 중심으로 보면 가장 높은 건물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오늘은 한주중에 가장 이른 출근길이다. 항상 호텔 주변으로 출근하던 평상시와는 달리 의도치 않았던 시선을 호텔로 옮겨갔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이유 때문일까, 쉐라톤 호텔 정면 외벽에 새롭게 등장한 하트 모양의 네온사인이 도심을 사랑으로 품어가고 있다. 갑작스러운 하트 모양의 등장에 의식 없이 차를 멈추어 세우고 핸드폰에 풍경을 담아냈다.

쉐라톤 호텔 전경

회사에 출근하여 내일이 밸런타인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랜타이 데이는 연인들에게는 최상의 가치점거할 수 있을 정도의 가치 비중이 큰 기념비적인 날이 분명하다. 


서양권에서의 밸렌타인데이는 남녀 무관하게 연인들이 선물을 나누는 기념일이지만, 동양권에서는 일단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가 구분되어 있다. 밸런타인 데이는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로 규정되어 있다.


결혼 후 오랜 기간 밸런타인 데이가 아닌 화이트데이가 되면 아내에게 전해줄 선물을 고민했던 한 때가 있었다. 세월이 무뎌진 이유에서 일까, 요즘은 심지어 결혼기념일마저도 건너뛰는 간 큰 남자로 변해 갔다. 핑계를 굳이 합리화시키자면 아직까지 고 있다는 안도감 내지는 오랜 세월 의리로 부부연을 이어가고 있다는 일종의 자만심 같은 만족이 이유일 수도 있다. 물론 사랑의 감정은 예전만 못하다. 감정이라는 놈도 결국엔 세월을 비켜갈 수 없는 운명에 놓여 늙어가고 있음을 인정한다.


가족 생일 이외에는 사소한 사회 테두리 내에서 정한 기념일은 영혼 없이 내 주위에서 차츰 하나  떠나 버리시작했다. 해마다 귀찮고 반복되어가는 과정이 번거로웠던 원인에는 해가 거듭될수록 나이 탓이 어쩌면 지배적일 수도 있다.

아들이 퇴근길에 꽃다발을 한 아름 아내에게 안겨주었다. 아빠가 엄마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염려에 아들이 대신 준비했노라고 너스레를 떤다.


아들에게 오늘 저녁에 강아지가 먹을 사료가 떨어져 퇴근길에 잊지 말고 사료를  사 올 것을 신신당부해서 보냈다. 혹시라도 퇴근길에 사료 사 오는 것이 불편하면 엄마 아빠가 대신  사 오겠다는 조건까지 붙었다. 아들은 굳이 자신이 퇴근길에 사료를 사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퇴근해서 돌아온 아들 손에는 아내에게 전해줄 꽃다발 전부였다.

"꽃까지 사 올 생각을 했는데 왜 강아지 사료를 기억해 내질 못했을까, " 

아들의 행동이 다소 이해되지 않아 혼잣말을 내 뺏았다. 아내가 혼잣말을 때마침 들은 모양이다.

"여자 친 꽃 살 때 제 것까지 샀으니 꽃을 시간이야 당연히 있었겠지요 하지만,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매장 에 화장실이 없어 사료 사는 것을 미루고 황급히 집으로 왔다고 하잖아요"

아내는 정성스럽게 꽃다발까지 챙겨준 아들의 선물로 인해 강아지 사료에 대한 관심을 잠시 내려놓은 눈치이다. 


예전 같으면 부부 사사에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를 두고 선물을 챙겨주지 못하면 은근히 심기가 불편한 표정을 짓었다. 지금은 부부의 선물에 관계없이 아들의 선물 하나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부부도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사랑이라는 예식에도 유효기간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문득하게 된다.


누군가는 밸런타인데이가 초콜릿 회사의 상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센 항변으로 굳이 그날을 의미 부여할 필요하겠냐고 반문 하지만, 연인들에게 있어서는 어떤 의미이든 주어진 구실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예전의 나의 경험까지도 떠올려본다,


국경에는 연인의 기념비적인 행사에 차등이나 구분이 없다. 밸런타인데이야 말로 초콜릿 회사의 상술이라는 관계를 떠나 청춘남녀가 사랑을 나누어갈 수 있는 지구 상 최상의 기념일 인지도 모른다,


초콜릿처럼 달달하고 달콤한 사랑이 담긴 밸런타인데이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오는 것이 있어야 행복한 것도 있지만 떠나가야  분명 행복한 것도 있다. 그것이 바로 코로나이다. 하루빨리 떠나가는 길에 축복이 될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서로의 입김을 마주할 수 지구촌의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 생각만으로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중년은 밸런타인 데이 대신 하루빨리 코로나를 배웅할 수 있는 날을 만날 수 있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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