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부근에쉐라톤 호텔이 있다. 주변을중심으로보면가장높은 건물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오늘은 한주중에 가장이른출근길이다. 항상호텔 주변으로 출근하던 평상시와는 달리 의도치 않았던 시선을호텔로 옮겨갔다.어둠이 걷히지 않은 이유 때문일까,쉐라톤 호텔 정면 외벽에 새롭게 등장한 하트 모양의 네온사인이 도심을 사랑으로 품어가고 있다. 갑작스러운 하트 모양의 등장에 의식 없이 차를 멈추어 세우고핸드폰에 풍경을담아냈다.
쉐라톤 호텔 전경
회사에 출근하여내일이 밸런타인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랜타이 데이는 연인들에게는최상의 가치를 점거할 수 있을정도의 가치 비중이 큰 기념비적인 날이분명하다.
서양권에서의 밸렌타인데이는남녀무관하게 연인들이 선물을 나누는기념일이지만,동양권에서는일단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가 구분되어 있다. 밸런타인데이는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로규정되어 있다.
결혼 후 오랜 기간밸런타인 데이가 아닌 화이트데이가 되면 아내에게 전해줄 선물을 고민했던 한때가 있었다. 세월이 무뎌진 이유에서 일까, 요즘은 심지어결혼기념일마저도 건너뛰는 간 큰 남자로 변해 갔다. 핑계를 굳이 합리화시키자면아직까지 잘 살고 있다는 안도감 내지는 오랜 세월의리로 부부연을 이어가고 있다는일종의 자만심 같은만족이 이유일 수도 있다. 물론사랑의 감정은 예전만 못하다. 감정이라는 놈도 결국엔세월을 비켜갈 수 없는 운명에 놓여 늙어가고 있음을 인정한다.
가족 생일 이외에는 사소한 사회 테두리 내에서 정한 기념일은 영혼 없이 내 주위에서 차츰 하나 둘떠나버리기 시작했다. 해마다 귀찮고반복되어가는 과정이 번거로웠던 원인에는 해가 거듭될수록 나이 탓이 어쩌면 지배적일 수도 있다.
아들이 퇴근길에꽃다발을한 아름 아내에게안겨주었다. 아빠가엄마를 위한 선물을준비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염려에아들이대신준비했노라고 너스레를 떤다.
아들에게오늘 저녁에강아지가 먹을 사료가떨어져 퇴근길에잊지 말고 사료를 사 올 것을 신신당부해서 보냈다. 혹시라도 퇴근길에 사료 사 오는 것이 불편하면 엄마 아빠가 대신 사 오겠다는 조건까지 붙었다. 아들은굳이 자신이퇴근길에사료를 사 오겠다며집을 나섰다.
퇴근해서 돌아온 아들 손에는아내에게 전해줄꽃다발이전부였다.
"꽃까지사 올 생각을했는데 왜 강아지 사료를 기억해 내질 못했을까, "
아들의 행동이 다소이해되지않아혼잣말을 내 뺏았다. 아내가 혼잣말을 때마침 들은 모양이다.
"여자 친구 꽃 살 때 제 것까지 샀으니 꽃을살 시간이야 당연히 있었겠지요 하지만,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매장 안에 화장실이 없어 사료 사는 것을미루고황급히 집으로왔다고 하잖아요"
아내는정성스럽게꽃다발까지챙겨준아들의선물로 인해 강아지 사료에 대한 관심을 잠시 내려놓은 눈치이다.
예전 같으면 부부 사사에밸런타인데이와화이트데이를 두고 선물을챙겨주지 못하면은근히 심기가 불편한 표정을 짓었다. 지금은 부부의 선물에 관계없이아들의 선물 하나만으로도행복을 느끼는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부부도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사랑이라는 예식에도유효기간이존재한다는생각을 문득하게 된다.
누군가는 밸런타인데이가 초콜릿 회사의상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센 항변으로 굳이그날을 의미부여할 필요하겠냐고 반문 하지만, 연인들에게 있어서는 어떤 의미이든주어진 구실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예전의 나의 경험까지도 떠올려본다,
국경에는 연인의 기념비적인 행사에 차등이나 구분이 없다. 밸런타인데이야 말로 초콜릿 회사의 상술이라는 관계를 떠나 청춘남녀가 사랑을 나누어갈 수 있는 지구 상 최상의 기념일 인지도 모른다,
초콜릿처럼 달달하고 달콤한 사랑이 담긴 밸런타인데이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오는 것이 있어야 행복한 것도 있지만떠나가야분명 행복한 것도 있다. 그것이 바로 코로나이다. 하루빨리떠나가는 길에 축복이 될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서로의 입김을 마주할 수 있는 지구촌의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 생각만으로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중년은 밸런타인 데이 대신 하루빨리 코로나를 배웅할 수있는 날을 만날 수 있길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