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종섭 Mar 14. 2022

평범한 일상 속으로의 회복

캐나다인들은 마스크를 일상생활에서 떠나보내 버렸다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BC) 주는 마스크 없는 일상을 선언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진 사례 증가로 이어지던 지난해 8월 24일 실내 공공장소에 대한 마스크 의무화를 다시 도입한 후 6개월 만에 다시 일상으로의 마스크 없는 해방을 선언했다. 마스크를 벗고 일상으로 복귀, 생각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 우리 모두는 하룻밤이 지나고 나면 아무 일 없듯이 끝날 것이라는 세상 밖에 소리에 집중했다. 결국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희망은 차츰 믿음에서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평범했던 일상의 시간이 어쩌면 영원히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두려움의 시간으로 바뀌어 나가기 시작했다.


쉽게 끝날 것만 같았던 생각에 오류가 있었다. 코로나보다 빠른 전파력을 가진 델타 변이 바이러스 등장은 다시금 지구촌 전체를 긴장 상태로 빠져들게 했다. 세상이 끝날 것 만 같았던 절망의 두려움이 확신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모든 국가는 팬더믹으로 인해 각국은 서로 국경의 대문을 굳게 닫아걸 고립된 세상의 시작을 알려왔다. 우리에게 팬더믹은 길고 긴 고통의 시간이었다. 시간의 정체만큼 후유증 또한 날로 커져만 갔다. 많은 시간을 보낸 지금 팬더믹은 점차적으로 세력이 약해져 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여유를 찾아가면서 잃은 것과 얻은 것에 관해 알고자 하는 민감한 반응을 보여오기 시작했다.


고통의 시간에는 인내라는 마스크가 있었다. 언제부턴가 마스크는 자연스럽게 사람의 삶 속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 마스크를 벗는다는 것, 그것은 분명 우리에겐 희망이었다. 마스크에 가려졌던 형상의 조각이 바깥세상에 완전히 내보일 때 비로소 일상의 모든 것을 얻어낸 자유의 설렘이 었다. 팬더믹 시대의 과정을 뒤돌아보면 우리가 누려왔 과거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인색했는지를 반성하게 된다.


지금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은 팬더믹 이전의 일상으로 복귀를 위해 빠르게 서두르고 있다. 캐나다는 마스크에서 해방을 선언한 지 삼일째로 접어들고 있다. 아직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내는 물론 실외에서도 마스크를 벗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행동을 보여 오고 있다. 코로나 감염에 대한 확신의 부재일 수도 있다. 또한, 그동안 마스크 착용이 생활 속에 익숙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멀지 않아 대부분 마스크를 벗고 나면 마스크에 대한 존재감은 기억상실증에 빠져 가게 될 것이다.


오늘도 사무실 동료들은 여전히 마스크를 벗지 않은 종전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순간, 마스크를 벗고 있는 나를 의식하게 되면서 마치 죄인이 된듯한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 어제 책상 서랍 속에 묻어 두었던 마스크를 슬며시 꺼내어 들었다. 팬더믹이 완전히 지구촌을 떠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물러서고 나면 감기. 독감 정도의 몸살에 지나지 않았다고 서로를 위로할지도 모른다.


월의 봄은 어느 해보다도 위대하지 않았을까, 겨우내 움츠렸던 대지에 꽃을 피워가는 계절적 변화를 보고 단순하게 감정에 호소하는 봄이 아니었다. 얼어붙어 있던 이 땅 위에 꽃을 피우는 일보다 더 감격적인 순간찾아왔기 때문이다. 잃어버렸던 두 번의 봄 , 생각은 미묘하게 교차한다. 잃어버릴 것만 같았던 봄을 다시 찾은 기분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