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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Jul 29. 2022

나이가 들어보니 알겠더라

나이가 들어보니 이제야 진정한 삶을 포용한 세상이 보이더라

젊었을 때에는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30대를 마지막으로 보내고 40대를 맞이하던 날, 나이에 진심이 담긴 세상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땐 그랬다. 나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인생에 충격의 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40대라는 의미는  생애에 젊음 날이 이제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는 절박함의 마음으로, 마치 인생이 끝난 처럼 다가섰다. 어쩌면 늙어간다는 생각의 출발점은 아니었을까,


40대를 살아내면서 49살에 붙어지는 아홉수를 조심해라, 주변의 우려가 담긴 덕담은 마음에 짐이 된 긴장감으로 40대를 보냈다. 아홉수에는 우연이든 필연이든 안 좋은 일이 쉽게 지나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늘 생각 속에 잠재되어갔다. 운명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운전자님 천운이십니다" 긴급 출동한 경찰관의 첫마디이다. 고속도로에서 운명처럼 찾아온 대형 교통사고를 통해 미리 48살에 아홉수를 액땜했다. 그 후 이 모든 것이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고통스러운 삶의 관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오십이 되고 보니 40대는 덧없이 젊은 날의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도 30대를 보내고 40대를 맞이하는 절망감처럼 50대를 절망적으로 맞이했다. 이제 멀지 않은 시간에 60대를 맞이할 것이다. 이 또한 오십 대를 보내면서 60대를 맞이하는 마음은 하나 더 보태어 젊음이라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희망이 접혀 가는 현실을 맞이 할 것이다.


늘 내 위치에서 모든 것이 지나가는 시간은 희망보다는 절망을 예고했다. "오늘이 내 생에 가장 젊은 을" 지금에 깨닫지 못한 인생 삶의 지혜라는 부족 때문은 아닐까 싶다.


삶이란, 흔히 별것 아니라고 한치 생각의 머뭇거림 없이 내 뺏는다. 별것 아닌 일들을 시끌벅적한 삶에 이유를 흔쾌히 단정 짓지 못하는 중생, 평생을 살 것처럼 욕심의 삶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또 다른 삶의 오류를 가지고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오늘도 생각에만 잠시 매달리다가 지나쳐버리는 단순한 삶의 어리석은 과정이 여전히 존재했다.


나이라는 흔적을 남기는 일에 우리는 얼마만큼 집착했을까, 과거의 흔적보다는 미래에 집착하는 나이가 진정한 지금의 나잇값을 하는 것은 아닐까,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 보니 내가 아닌 세상까지 바뀌더라.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사소하게 생각했던 호칭은 물론 마음까지도 바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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