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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Aug 01. 2022

배가 나오면 불편한 진실

살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살면서 한때는 한 번도 안 올지 모를 일을 고민스러워했었다. 한 번 정도는 살을 쪄보았으면 하는 소망이 그것이었다. 예전과는 달리 현대사회는 국경을 초월한 많은 사람들이 공통된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러한 현실 세계에서 살을 쪄보고 싶다는 생각이 과연 행복한 일까, "김 서방 잘 먹어야 살찌네" 장모님은 사위를 볼 때마다 마른 장작 같다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살 좀 찌라고 성화하셨다. 그때마다 비만과는 달리 살찔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일이 고민스러웠다.


딸 가진 부모 입장에서 보면 사소한 부분까지도 부담이 되셨을 것이다. 결혼 이후에도 사위 몸이 부실하면 시댁에서는 분명 며느리 탓으로 돌아올지도 모를 예감이 존재했을 것이다, 숱한 시간을 보낸 세월 앞에서도 몸무게는 여전히 별다른 변화의 이동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허리사이즈는 물론 몸무게까지도 함께 불변이다.


몸이 약할지는 모르지만 늘 자유로웠다. 활동할 때마다 몸은 가벼웠다. 어떤 일을 행하던 몸의 부실함에 힘겨움을 호소하지는 않았다.


어느  예고 없이 뱃살이 찾아왔다. 심각할 정도의 생각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예고 없이 찾아왔던 것처럼 예고 없이 떠나갈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확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뱃살은 시간을 보태어 갈 때마다 모양새는 가관이 아니었다. 차츰 뱃살의 반항 올챙 배 모양을 닮아가고 있었다.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툭하면 말 끝에 세월의 이유 변명을 얹어놓았다. "예전에는, 옛날에는, 나이가 들어보니, " 과거의 시간을 들추어 변명거리를 만들어 같다. 정말 예전(왕년)에는 그랬다. 어떤 옷을 입어도 무난하게 소화가 충분했다.


지금 상황은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우선이라는 관계도 바뀌어갔다. 옷이 먼저가 아니었다. 몸에 옷을 선택해야 하는 슬픈 사연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뱃살을 실제적으로 경험해 보니. 역지사지라는 말을 실감한다. 뱃살로 인해 불편한 시간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우선 행동부터 통제된 제약이 생겼다. 움직임이 둔해지고 조금만 걸어도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허리를 굽히는 일 또한 곤혹스러웠다. 뱃살이 주범이 되어  좀 더 젊어 보이려는 마음에 상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소파에 앉아있던 일상의 시간을 제외하고 일단은 먹고 난 후 누워야 편안해지는 일상이 시작되어 갔다.


더 이상 뱃살이 빠질 것이라는 희망은 혼자만의  착각이라는 나약한 생각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뱃살과의 전쟁이라는 말뜻주변 일만은 아니었다. 뱃살을 빼기 위해 생전 처음 인터넷에 정보를 얻어내기 시작했다."뱃살 "첫 번째 키워드이다. 제시된 운동방법도 다양했지만  손쉽게 장소와 관계없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려했다. 윗몸일으키기가 최상의 방법이었다. 가벼웠던 몸과 달리 윗몸일으키기도 쉽지 않은 방법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떤 옷을 입을까, 별다른 고민 없이 옷장에서 선택 없이 아무 옷이나 무분별하게 꺼내 입어도 만족했다. 뱃살이 나온 이후 아무 옷이라는 선택권은 없었다. 뱃살로 인해 생각지도 못했던 몸의 균형이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평소 나이에 맞게 소신을 가지고 늙어가고 싶었던 희망까지도 갈등이 되어갔다.


옛날에는 출근하기 전 옷을 갈아입고 거울 앞만 서도 설레었다. 지금은 설렘의 감정도 세월 속에 변해갔다. 주인에게 간택된 옷을 자신 있게 입고 출근해도 확신이 서질 않았다. 혹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론 한때는 남의 이목 없이 보낸 시간도 있었지만 무엇인가 자신에게서 불만족스러움이 생겨날 때마다 다시 주변의 눈치를 살펴가는 피곤함이 생겨났다.

 

저마다 개성시대를 살아가고는 있다. 오늘도 쇼핑몰 인도우에 마네킹에 입혀진 옷에 눈길을 좁혀간다.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을 입어보았지만 왠지 어색하고 낯설기만 하다. 옷태가 난다는 말도 한때라는 시절이었다. 같은 옷일지라도 사람에 따라 달라질 때가 있다. 젊었을 때에는 아무 옷이나 입어도 어울렸고 지나가는 사람의 눈길까지사로잡을 정도의 자신감으로 옷을 입었다.


요즘은 뱃살로 인해 옷에 관한 선택권이 자유를 잃어갔다. 옷이 편하고 만족하기보다는 아직까지도 이목이 존재되어 가는 불편함이 주어졌다. 출근 전 어떤 옷을 입을까, 선택되어갈 을 고르고 있다.  오늘은 선택된 옷만큼은 제발 자신감 넘치는 옷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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