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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Feb 09. 2023

임종을 바라보면서

밝은 빛을 쫓아 장모님이 세상을 떠나가셨다.

장모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임종의 시간이 긴 탓에 자식들은 물론 멀리 있는 손주까지도 돌아가시기 전에 생존의 모습을 지켜보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나가셨다. 옛말에 임종을 지켜본 자식은 효자라고 했다. 그 말은 지금도 여전히 세대의 흔들림에 변함이 없다. 탄생이라는 생일의 선물과는 달리 부모의 죽음 앞에 배웅할 수 있는 자식이  효자라는 것은 분명 다.


다급한 마음에 아내를 먼저 병원 응급실 입구내려주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황급히 응급실로  쫓아갔다. 응급실 안은 초상분위기 같은 전율이 맴돌았다,

"당신도 빨리 마지막으로 장모님 손 한번 잡아줘요"

아내는 희망을 내려놓은 듯한 무덤덤한 어조가 묻어 있었다. 환자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위급한 상황이라 오늘 환자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방금 전 의사 선생님이 말씀을 하시고 나가셨다고 한다. 그동안 몸이 안 좋으셔서 몇 차례 응급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지만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해 내지 못했던 일이다.


아침 6시 반경에 병원에서 할머니 간호를 밤샘하던 아들에게서 울먹이는 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할머니가 숨을 멈추셨다는 비보를 전해왔다. 아들은 서울에서 오랜 비행 끝에  밴쿠버에 도착한 후에도 휴식 없이 줄곧 할머니 병실을 밤샘하면서 지켜왔다. 의사 선생님은 더 이상 환자가 의료기술로는 치료될 수 없다는 판단과 함께 장모님 몸에 부착되어 있던 의료 장비 모두를 탈착 했다. 환자의 상태를 의료장비에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매시간 으로 확인할 할 수 밖에는 없는 환경 되어 버렸다. 아들은 할머니가 숨이 멈추려 찰나의 순간에 임종 지켜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과는 달리 위급했던 일주일 동안의 상황은 죽음의 터널에서 끈질긴 사투 끝에 결국은 운명을 맞이하시고 말았다.


병실에 도착했을 때에는 밤샘을 한 손주들이 시신을 어루만지면서 흐느껴 울고 있었다. 시신의 체온이 식어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만져 보려 하는 가족들 또한 통곡과 함께 슬픔이 병실 안에 가득 찼다. 병원 측 관계자는 고인과 충분한 별인사를 끝내고 난 후에 병실을 정리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가족들은 고인과의 마지막 별의 아쉬운 시간을 보내고 병실에 남아있던 물품들을 챙겨 병실을 빠져나왔다. 병실에 홀로 남아계신 장모님은 잠을 자는듯한 평온한 모습으로 병원 직원의 손에 이끌려 홀연히 영안실로 떠나가셨다.


캐나다 장례문화는 한국 장례문화와는 많은 차이점을 두고 있었다. 한국처럼 사망과 동시에 병원에 빈소가 마련되어 고인의 명복을 비는 장례 예절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망과 동시에 병실에서 가족과 마지막 고별인사를 나누고 나면 고인은 곧바로 영안실에 안치되는 것이 서순이였다. 그 이후로는 사실 가족이 더 이상 병원에 머물 이유가 없어졌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 생업에 복귀하거나 개별적으로 애도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장례를 주관하는 업체에서 입관 이 잡히면 입관 예절을 진행한다. 입관예절이 끝나고 나면 종교시설로 옮겨져 장례식을 치르게 된다. 종교가 없는 가족은 장지에서 장례식을 진행한다. 장례예식이 끝나고 나면 화장과 함께  미리 마련된 고인의 묘에 안장하는 것으로 고인의 추모행사가 끝나게 된다.


처갓집은 장모님의 별세로 한세대가 떠나갔다. 숱한 시간 함께 했던 추억들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져 그리움만 남겨 놓았다."엄마 밝은 빛만 쫓아가세요 "큰 처남이 임종을 앞둔 장모님에게 마지막 속삭이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아마 지금쯤 밝은 빛을 쫓아 열심히 가고 있을 장모님의 명복을 다시 한번 뜨겁게 빌어본다.


<고인을 애도하는 시간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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