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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May 23. 2023

 아버지의 무공 훈장

아버지는 6.25 참전  73년 만에 무공 훈장을 받으셨다.

한 달 누님으로 부터 무공 훈장이 담긴  카톡 사진을 전해 받았다. 카톡 사진에는 6.25 무공훈장 수훈 기념패와 함께 무공훈장과 훈장증서까지 카톡에 가득 담겨 전해져 왔다. 일단, 사진 내용은 너무나 풍성했다. 정부에서 실행하는 6.25 참전용사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에 아버지가 수혜자의 자격을 얻으신 것이다. 오랜 세월 유공자를 위한 예우가 정체되어 있던 아쉬움은 있었지만, 사진으로 나마 훈장을 보는 순간타협과 절충 끝에 생겨난 화해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아버지에게는 명예로운 역사적인 시간이다. 그것도 생각을 얻어내지 못한 무공훈장과 국가 유공자라는 값진 것을 한꺼번에 두 가지를  얻어 냈기 때문이다. 이는 자식은 물론 자손에게도 경사스럽고도 자랑스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정부 사업의 일환으로 펼쳐지고 있는  6 25 참전용사 무공훈장 찾아주기 프로젝트를 통해 국가에 대한 불신을 가졌던 생각이 신뢰라 회복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세상과 이별하신 지 반세기가 훌쩍 넘은 세월의 안타까움이 사실 존재하고 있다. 또한  6 25 전쟁 발발 73년이라는 긴 세월을 묵묵히 건너온 역사도 있다.


며칠  누님께서  또 다른 내용을 가지고 연락이 왔다. 누님의 첫마디가 왠지 격양되어 있음을  순간 직감했다. 그 내용인즉,  유가족이 희망할 경우 아버지 유해를 국립현충원으로 모실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첨언하였다. 전직 몇몇 대통령마저 현충원 안장에 배제된 상황을 비추어 볼 때 아버지가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을 놓고 보아도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다.


현충원 안장 소식이 있고 난 후, 누님과 형님은 아버지의 산소 이장 계획을 빠르게 실행해 나갔다. 우선 선산에 있는 아버지의 분묘를 파묘하여 시신을 수습하였다. 수습한 아버지의 유골은 곧바로 화장터로 향했다. 화장시간은  한 시간가량 소유가 되었다. 화장이 끝나고 곧바로 유골함을 인계받아 서울 동작 국립 현충원으로 출발 제2충혼당에 도착했다. 최종 안치 완료 시간은 오후 다섯 , 이른 아침 서둘러 산소이장을 끝내고 현충원까지 빠르게 기념비적인 일을 단 하루 만에 마무리하였다.


 아버지가 안치되어 있는 국립 현충원 충혼당에는 어머니까지도 사망을 염두에 두고 아버지 유골함과 나란히 안장할 수 있는 공간 마련 해 준 정부의 극진한 예우까지 이번 행사에 겨있었다.

무궁훈장과 훈장증, 무궁 훈장 수훈 기념 패까지 감격의 순간을 보탰다.

아버지 세대는 국가가 개인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의 개인적 고민과 이해보다는 동족 비극이라는 암울한 격동의 시대라는 커다란 6. 25 전쟁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가가 국민을 위한 일보다는 국민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 세대 6.25 전쟁은 참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땅에 무수한 피를 수혈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73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노년이라는 세월을 맞이하고 있다. 현대 세대백세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6.25 참전 용사들의 생존해 계신 분들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는 것이 또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먼저 생각을 꺼내어 낸다.


국가를 떠나 살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이민자 대부분이 반 한국사회적인 기류를 타고 이민의 길을 최종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들 대다수가 애국의 마음을 가지고 살았을까,라는 의문에 개인적 생각으로는 동의하지 못하고 사실 반신반의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성장하는 모든 동식물에게도 기반이 될 수 있는 뿌리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사람에게는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태어난 곳 곧, 국가를 근간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 그 뿌리의 원천은 조국이고 그 조국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민자 모두는 한국적인 정서를 저버리고 타국에서의 삶을 영위해 가고는 있지만, 본래의 잠재되어있는 심성은 한국인이라는 것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조국이라는 그리움의 향수를 마음에 담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이번 행사를 통해 직. 간접적으로 참전용사의 예우를 경험하고 조국 더 감동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글을 쓰면서 지면으로 나마 다시 한번 나의 조국 대한민국진심 어린 정성에 감사함을 전한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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