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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Jun 30. 2023

육십이 되어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사람의 관계에는 항상 조건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삶 속에는 미묘한 것들이 항상 존재했다. 그중 하나가 사람과관계이다. 우리는 제일 먼저 친구라는 이름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맺어가기 시작했다. 일상의 뜰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게 된다. 손에 놀이기구가 들려 있지 않아 뛰어다니면 노는 모습이 마냥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이처럼 어렸을 때에는 조건 없이 단지 함께 놀아줄 수 있는 친구만 있어즐거움이 가득했다.


젊음날에도 유년기와 다를 것 없이 기쁨과 웃음을 주는 관계만으로도 행복했다. 그것이 삶에 있어 관계의 전부인지 알았다. 어떨 때에는 친구와 별일도 아닌 일을 가지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싸움의 발단은 전혀 싸워야 할  문제를 가지지 않은 단순한 것들이었다. 그 시절 그 나이에는 서로에겐 지나친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상 싸우고 나면  하룻밤도 못 넘기고 다시 화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었다.


주위에 친구가 없으면 세상 반쪽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친구 없이 죽고 못 살 정도로  우정이 우선이라는 존재감을 가지고 성장해 왔다. 그래서일까, 젊은 날에는 주위에 친구가 넘치도록 많았다. 아무 조건 없이도 친구가 되었고, 실속 없이도 그냥 만나면 즐겁고 편안함, 그것 친구의 조건이고 관계라고 생각해 왔다. 성인  이후, 친구의 관계는 조건을 가져가고 있었다. 기대치에 못 미치면 실망과 서운함이 차츰 만남의 횟수까지 줄어들어가고, 만남의 시간 공백은 예고된 우정에 금이 가는 관계로 돌아서고 말았다.


합창시절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이놈아 친구도 좋지만 제발 공부 좀 해라. 커서 출세하면 주위에 사람이 넘쳐나는 법이"

어머니는 친구라는 관계의 중요성보다는 학업이 우선인 세상을 알려 주셨다. 성인이 될 때까지 어머님은 귀에 따지가 정도도 말씀하셨지만, 일상적인 잔소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영혼 없이 떠나버렸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전의 학연. 지연이라는 관계보다는 새로운 사회 친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조건 없이 쌓아온 우정의 친구와는 달랐다.


세상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에도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모르고 오십 대라는 나이를 훌쩍 떠나보냈다. 육십이 되고부터 인간관계라는 과정이 어렵게 느껴져 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가 즐겁지가 않았다. 공통의 공감을 불러올 수 없음이 왠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일에 차츰 마음을 닫기 시작했다. 굳이 마음을 써가면서 친구를 만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이유의 까닭일 것이다.


나는 사회가 규정하는 나이로 이미 정년을 맞이했다. 하지만, 사회로부터 연금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아직도 5년 정도의 일을 연장해야 했다. 다행히 정년인 나는 아직도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예전의 직장과는 업무 형태가 전혀 다른 직장이다. 직장생활이 예전 같지 않다. 역량력 부족의 이유가 클 것이다. 동료와의 관계 또한 예전과는 사뭇 현저한 차이를 가져왔다. 사회 내부의 환기구를 열고 직장내부를 들여다본다. 예전에는 동료의식이 강하게 결집되어 있었다. 지금보다는 한 살이라도 젊은 날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로의 단점은 보완해 주었고 감싸주었다. 장점은 진심 어린 칭찬을 아낌없이 해주었다. 세상이 변해버린 탓일까, 동료라는 의식이전에 각자 마음 안에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이 든다.  괜한 세상 탓, 시대 탓. 나이 탓, 일지도 모른다. 때론 동료 간에 무심코 내뱉은 말이 상처가 되어 가기도 했다. 뇌의 구조가 전혀 상대를 배려하지 못한 시대의 오류를 범한 것일까, 무심코 뱉어 놓은 말이 상대에겐 상처가 되어갔다.

"무심코 던진 말은 돌이 되어 개구리가 맞아 죽었다"

비단 언어뿐만 아니다. 남의 영역까지도 침범하고도 정당화하고 무시하는 일, 온갖 것들이 관계를 불편하게 하는 직장 내 불합리한 관계 활동도 가끔 목격이 된다. 자신은 완벽하고 상대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문제이다. 관계를 나누려는 협력 내지는 포용이 부족한 것도 이 중 하나의 문제 일 것이다.


젊었을 때에는 생각 없이도 부딪치고 아니면 말고라는 강한 마음과 행동이 작용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차즘 소심해져 가고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버려야 생각까지도 마음에 두고 또 상처를 만든다.


나의 인간관계는 어떨까, 혹시 나로 인해 상처를 입은 사람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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