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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Mar 06. 2024

아들이 이사 가던 날

아들이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갔다

"이사 가던 날 이사 가던 날 뒷집아이 돌이는 각시 되어 놀던 나와 헤어지기 싫어서 장독뒤에 숨어서 하루를 울었고ᆢ"

이사 가 날을 노래 가사에 옮겨 놓은 오래된 국민 노래이다. 옛날에는 한 곳에 정착해서 살았기 때문에 이사가 생소한 느낌으로 들렸던 시대가 있었다. 요즘은 잦은 주거지 이동으로 인해 한 곳에서의 정착은 오래전에 탈바꿈되어 갔다.


아들은 결혼 두 달을 남겨 놓고 오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오랜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성남으로 이사를 했다. 캐나다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원룸지하에서 생활을 시작하여 역세권에 있는 아파트 전세까지 몇 번의 이사를 했다.

이사 하루 전에 이삿짐을 싸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해 놓은 비닐백에 옷가지를 챙겨 넣았다. 이사할 짐이 그리 많지 않았다. 8년 동안 서울에 살면서 식사는 밖에서 대부분 해결을 하여 특별하게 챙겨야 할 주방용 품나 식기류가 없다. 가지고 갈 이삿집이 별로 없다. 옷 서랍장과 침대 2개 중 캐스트 룸에 있던 침대 하나와 옷 서랍장은 분리수거 대상으로 문밖으로 떠나 버렸다. 침대하나, 세탁기와 건조기는 이삿짐차에 유일하게 자리를 잡는 물건들이다.


8시 반쯤 , 이삿짐차가 도착했다. 1톤 규모의 작은 차량으로 원룸정도의 이삿짐만 전문으로 한다고 한다. 가져갈 짐을 이삿짐차에 옮겨 실었다. 얼마 안 되어 보이던 짐이 이삿짐차에 하나 가득이다. 더 이상 남은 짐을 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이삿짐 사장님 말씀이다. 승용차 트렁크와 뒷좌석에 남은 짐을 간신히 싣는 것으로 남은 이삿짐이 해결되었다.


이삿짐 차를 먼저 출발시키고 아들과 뒤쫓아 출발했. 캐나다에서 서울 도착한  일정을 소화해야 할 일들이 있어 이사 갈 아들의 집을 가보질 못했다. 다만, 서판교 근교 정도의  정보가 전부이다. 이사집에 도착했다. 주변이 너무나 익숙한 곳이었다. 주변으로는 정신문화연구원이 자리하고 있고 유명한 맛집, 청계산 순두부집부터 시작하여 먹거리가 풍부한 곳이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 당시 청계산 순두부 집을 직원은 물론, 지인들과도 가끔씩 들려 식사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주변 환경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화 것이 없다. 대신 도로 주변 뒤쪽을 중심으로 그동안 고급 빌라단지가  많이 형성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이사 가는 동네에 민감했다. 어디로 이사를 가세요라고 아들 지인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성남, 서판교, 어느 지역을  설정하느냐에 따라 판단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이삿짐을 집안으로 옮겨 놓고 오랜만에 청계산 순두부집에서 점심 식사를 해결했다. 순두부 1인분에 만원, 예전에 비해 가격이 많이 올랐다. 물론 어느 식당이든 가격대가 생각 이상으로 상상초월이다. 정부에서 정한 시급으로 한 끼 식사도 해결할 수 없으리만큼

예전과 몰라보게 가격대가 대 반전을 했다. 맛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


식사를 끝내고 카페를 찾았다. 카페 안은 많은 사람들로  난다. 인근의 주민이 아닌 외지에서 일부러 찾아온 손님들인 듯하다. 흔히 여유로운 시간대에 볼 수 있었던 카페 풍경이다. 아줌마 부대 손님이 주류를 이다.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손님의 유형은 변함없이 그대로이다.

수납장에 정리된 옷

비닐백에 담겨 있던 옷이 수납장에서

새로운 변신을 맞이했다. 옷도 누가 입는지, 어디에 걸려 있어야 하는지에 따라 분위가 달라졌다.


옮겨 놓은 짐을 정리하고 예비 며느리가 준비해 놓은 커튼을 거실과 방에 설치를 했다. 준공검사가 끝나고 새로 입주하는 집이라 안 전체가 깨끗하고 새롭다. 방 3개에 거실, 화장실 2, 드레스룸이 배치되어 있다. 현관입구와 주방 쪽에는 2개의 수납공간이 나누어 배치가 되어 있다, 일종의  창고와 부식창고의 가능인 듯하다. 과거와 달리 주거환경의 패턴이 많이 달라졌다. 천백만 원 서울 개봉동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했던 옛날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차이가 있다.

이삿짐 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다. 아들은 이사하니라 고생했다고 저녁 식사로 소고기를 사주겠다고 한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소고기 전문식당이 있다. 들어보지도 못한 새우살. 설화등심등을 부위별로 주문을 했다. 비싼 만큼 맛도 있다. 우리가 맛있는 고기를 먹을 때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을 쓴다. 일종의 입감이 그러했다.


식사  후식으로 냉면을 먹는 것으로 저녁식사가 끝났다. 3명의 저녁식사 자리에 이십오만이라는 돈이 청구되었다. 서민이 먹을 수 있는 저녁 식사비용은 결코 아니다. 아들은 돈보다는 생애 첫 입주라는데 의미를 두고 아빠에게 미리 입주 한턱을 쏜 것이다. 사실, 저녁식사 값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가격을 떠나 입주기념 한턱이라는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한국에 온 지도 벌써 14일째이다. 언제 캐나다에 있었나 할 정도로  차츰 한국

생활에 익숙해진다. 아마도, 오랜 세월 살아왔던 고국이라 시간에 관계됨 없이 빠르게 환경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아들과 같은 침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을 맞이 있다. 하루종일 이사로 인해 피곤했는지 아들은 코 고는 소리를 끝내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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