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서울 현충원에 도착했다. 현충원보다는동작동 국립묘지라는 명칭이 더익숙한 곳이다. 작년3월 아버지의묘지를이장하여유골함이현충원으로옮겨졌다.같은 해10월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유골함은 아버지가 계신 서울 현충원에 함께 봉안을 하였다. 어머니는살아계실 때가톨릭 묘역에 안장되시길 원하셨지만 가족 모두는아버지가계신 현충원에 모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에 일치를 보았다.결국엔어머니 유지를 받들지 못하고 현충원으로 가셨다.
제2충혼당
한국에 도착하면 아버지의 산소를먼저찾았다. 게으름에 며칠이 지난 후에 인사를 드리는 경우도많았다. 사실, 서울에서 강화까지 거리가부담스러운 거리가 결코 아니다. 현충원으로 옮긴 이후 부모님을 찾아뵙는시간과거리가한층 더 짧게 줄어들었다. 예로부터 같이 살거나 또는 가까이 사는 자식이 효자라고 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지는 평범한 일상이 정확히 적용된 것이다.
부모님을 찾아뵙고 걸어서 현충원 주변을 들러보기로 했다. 충혼탑으로 가는 길목에는 무수한 참전 용사 전사자의 비석이자리하고 있다. 시대의 아픔과 함께 슬픔이재현되어 가는 느낌이다. 현충원 정문 앞을 걸어서 통과하기는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현충문을 통과하자마자 충혼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통령. 국회의원, 수많은 정치인들이당선되면약속이나 한 듯 의례히제일 먼저 찾아와 예를 갖추는 것이바로이곳충혼탑이다. 정치인이 이곳을 찾을 때의 마음처럼 이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은 의미가 있는 현충원 방문이다.작은 아들과 약혼녀의 한국 귀국인사이기도하고결혼을 앞둔 큰 아들이결혼 전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미리 인사를 드리는 날이기도 하다.
현충원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인 탓에 시장기가 돈다. 현충원 앞쪽으로 한강변이 근접하고 있어 갑자기라면을생각해 냈다.예전에도한강까지 가서라면을끓여 먹어보질 못하고 온 것이 내내 아쉬움이남아있었다.
편의점에서 각자 취향에 맞는 라면을 선택하고김밥에 치킨조각. 음료수까지 샀다. 라면 개수만큼 라면을 끓일 수 있는용기가 함께 계산되었다.앞쪽에 뜨거운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온수통이 있어 라면 용기에 뜨거운 물을 붓기 시작했다. 편의점 밖에서 청소를 하고 계시던 매장 주인은 기계에서 자동 물공급이 된다고온수를 별도로 사용하며 안된다고 소리를 치셨다. 라면 끓이는용기 위부분에 바코트가 부착되어 있었다. 용기를 기계 센서에 스캔한 후끓이는 부분에 용기를 내려놓았다. 자동으로 적당량의 물공급과 함께 시간이 설정되어 라면을 끓여내기 시작했다.
간단히 한강에서 아점을 해결하고 수원 삼성과 안양 FC 축구 경기가 있는 안양구장으로 행선지를 옮겨갔다. 경기시간 보다 두 시간 여유 있게 운동장에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주차공간은빈틈이없었다. 주차장을 몇 번 돌고 난 후 주차구획선은 아니지만 주차해도 지장이 없을 만한 주차 공간을 발견 주차에 성공했다.
휴일을 맞아 응원석은 이미 매진이 되었다. 이번 시즌최대 관중이라는 신기록까지기록했다고 한다. 수원삼성공격선수중 한 선수가 아들이 운영하는 회사에 소속되어 있어 수원삼성을 응원했다. 소속선수가후반전에 교체 투입되면서한 점을 보태어 3대 0이라는 득점을 얻어내는 귀염을 토해냈다.경기는 3대 1이라는 승리와 함께 종료되었다.
한국에 오면시간이 허락될 때마다경기 관람을 했었다. 그때마다아쉽게도 승리의맛을 느껴보지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이번에는 멋진 승리로 팀 1위까지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모처럼 하루의 꼬리가 길었던시간이었다. 새로운 길이 아니어도 갈 때마다 새로움을 가져오는 느낌은 그곳에 만족할 만한 무엇인가의 특별함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별함은 가족과 함께 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정말 아주 오랜만에 한국에서 가족이 함께 모여 하루를 보냈다. 앞으로 오늘처럼 가족이 함께 할 날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때는 아마도 새로운 식구인 며느리와 손주가 함께 동행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