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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May 10. 2024

세월의 맛, 비빔국수가 있다

맛에도 추억이 있었다. 비빔국수도 세월 변화에 입맛도 변해갔다

강화에 도착했다. 거의 7년 만인 듯한데 기억이 맞을지는 모르겠다. 새로운 도로가 생겨나 도시 풍경까지도 낯설었다. 낯익은 도로는 이미 구도로가 되어 버려 세월 흐름의 깊이를 깨닫는 순간이다.


옛날 강화 강화터미널 근처에 국숫집이 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 따라서 갔던 국숫집이다. 터미널이 새로운 곳으로 옮기고 난 이후 국숫집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국숫집에는 비빔국수와 잔치 국수 두 가지 메뉴가 전부였다. 나는 유난히 비빔국수를 좋아했다. 고소한 참기름 맛보다는 달달한 설탕 맛 좋았다. 다른 국숫집 국수맛에 비해 자극적인 매운맛보다는 달달한 맛이 좋아 아직까지 강화 국숫집을 기억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캐나다에서 가끔 강화국숫집에서 먹던 달달한 국수가 생각날 때가 있었다. 국수를 삶고, 삶은 국수 위에 신 김치를 송송 쓸어 넣고 후춧가루와 마늘. 참기름과 함께 설탕을 듬뿍 넣고 비벼 강화 국숫집 맛 흉내를 내보였다. 생각 이상으로 거의 흡사한 맛의 성과를 가져왔. 식구들에게도 강화국수 맛이 담긴 국수 만들어 주기 시작하면서 가정에 공인된 아빠표 국수라는 이름을 붙었다.


성묘를 마치고 강화읍에 도착했다. 옛날에 국숫집이 있던 주변은 새로운 건물이 생겨나 옛날에 있던 국숫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실 국숫집 상호도 기억해 내못하고 있었다. 검색창에 강화국숫집이라는 단어를 입력했다. 오십 년 전통 강화 국숫집이라는 내용이 올라왔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국숫집에 도착했다. 작은 입간판에 오십 년 전통이라는 문구와 함께 주인아주머니의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을 처음 보는 순간 주인아주머니가 맞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예전 주인아주머니 모습이 사려져 가 버리기 시작했다. 세월이 할머니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과거 젊은 시절 아주머니의 모습만을 고집한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식당 직원은 무엇을 먹을 것인지를 급하게 주문해 왔다. 예전에는 두 가지 단품 메뉴뿐이 없어 손님은 먹을 메뉴를 이미 결정하고 식당문을 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러한 손님 생각의 판단을 믿고 습관적으로 빠른 주문을 권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메뉴판에는 예전에 없던 열무국수와 콩국수가 추가로 제공되고 있었다.


 비빔국수는 보통과 곱빼기 두 종류가 있었다. 보통으로 2그릇을 주문했다. 식당안과 주방을 두리번거려도 사진 속 주인공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순간, 생존해 계시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죄송하지만 간판에 걸린 주인아주머니는 아직도 생존해 계신가요?"

주인아주머니 근황이 직원에게 물었다. 

"권사님은 지금 집에 계세요"라고 직원은 짧게 권사님이라는 호칭을 가지고 대답을 하였다. 주인 할머니를 비롯한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까지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듯싶었다. 더 이상 주인에 대한 근황을 묻지 않았다. 살아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다. 정확한 촌수는 모르지만 국숫집 주인아주머니는 나의 할머니 조카딸이라는 정도의 관계라는 것 만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국수를 드시고 국수값을 계산하려 하면 끝내 돈을 안 받으시고 사양하셨었다. 그 당시는 사실 촌수에 관해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먼 친척 정도 된다는 생각이 전부였다. 

비빔국수가 식탁 위에 올려졌다. 잠시 후  진한 멸치로 우려낸  멸치 국물을 가져다주었다. 멸치국물 냄새가 진동한다. 국수맛이 옛날처럼 달달하지가 않았다, 설탕을 조금 넣어 먹어야  것 같아 설탕을 찾아보았지만 식탁 위에는 달랑 소금 그릇하나만 놓여 있다. 사정권 안에 설탕그릇이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설탕 그릇을 가져다주겠다고 했지만 번거롭다는 생각에 주문한 그대로 국수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당신 강화국수 노래를 부르더니  이제 소원풀이 했네요" 아내는 국수 한 그릇을 맛있게 비우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한마디 한다. 사실, 옛날에 먹던 국수맛의 느낌은 아니었지만 맛있게 먹어주었다. 국수맛은 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을 법한데 아마도 입맛이 변했는 모른다.


국수를 먹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대 앞쪽에 설탕이 놓여있었다. 설탕을 좀 더 추가해서 먹었다면 어쩌면 옛날 맛이 완벽했을지도 모른다는 후회감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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