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향한 시 한 편
엄마를 향한 시 한 편
아카시아향은 기억을 싣고
늦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
초저녁이었다.
해가지고 가로등이 이제 막 켜진
어스름한 동네길을
엄마와 기분 좋게 산책할 때면,
솔솔 불어오는 저녁바람이
엄마와 나 사이를 선선히 휘감았다.
흩날리던 아카시아 꽃잎들이
엄마와 나 사이를 향기 가득 맴돌았다.
아카시아 향기만큼 달콤했던 걸음과,
아카시아 잎 하나 둘 따던, 장난기 어린 웃음이
내 기억 속 꿈처럼 담겨있다.
바람에 날려 사라진 줄 알았던 향기는
계절을 돌고 돌아
기억을 싣고 찾아온다.
내 삶을 살다 지쳐버릴 딱 그쯤,
좋았던 그때를 다시 한번 기억해 보라고
엄마품에 남아있던 그 은은한 잔향을
다시 한번 맡아보라고
그렇게,
나에게 말한다.
우리가 지나온 길 뒤에 떨어진
아카시아 꽃잎만큼이나
그때의 기억을 많이 많이,
오래오래 추억하고 싶다.
by. 써니 / 23.10.29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책을 읽고, 인상 깊었던 나무에 대해 나누는 시간이 있었어요.
저는 '아카시아나무'가 바로 생각났습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카시아나무의 정확한 명칭은 '아까시나무'입니다. 진짜 아카시아나무는 따로 있더라고요. 하지만 저도 '아카시아'가 더 익숙하네요.
향긋한 꽃내음으로 기억되는 아카시아나무는, 어린 시절 엄마와의 산책을 떠오르게 합니다.
집 바로 뒤에 산이 있어, 산 밑 담벼락엔 아카시아나무가 가득했습니다. 아카시아나무는 산 가장자리의 척박한 땅이라도 햇볕만 있으면 스스럼없이 뿌리를 내리고, 보란 듯이 희고 탐스러운 꽃을 한가득 피워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계절만 되면 아카시아 향기가 온 동네에 퍼졌어요. 정말 달콤하고 진한 꽃내음이었죠.
어른이 된 지금도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면, 그 시절 어스름한 골목길을 엄마와 함께 걸었던 행복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당시에 엄마와 무슨 이야기를 하며 걸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카시아 향기와, 어스름한 골목길 풍경,
선선한 저녁바람과,
아카시아 잎을 하나, 둘 따던
엄마와 나의 웃음만이,
내 기억 속에 꿈처럼 남아있습니다.
나만의 추억이 있는 음악을 들으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되죠. 향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나만의 추억이 깃든 향기를 우연찮게 맡으면 그때 그 장소, 그 온도, 그 감정들이 저절로 소환되며,
그 시절을 회상하게 합니다.(헤어진 남자친구의 향수 냄새를 어디선가 맡으면 그때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르듯)
저에게 '엄마'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한 것은 엄마의 '품'이었어요. 그래서 엄마를 생각하면 엄마의 품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처음 새엄마를 만나 그 '품'에 안겼을 때의 장소, 온도, 감정 등 모든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아요. 처음 본 사람이 낯설 법도 한데, 6살 아이에게는 엄마라는 존재가 그만큼 절실했나 봅니다.
그 품속에서 아카시아 향이 은은하게 났던 것 같아요.
다행히 저는 어린 시절 엄마와의 추억이 깃든 그 동네에서, 이제는 엄마가 되어 살고 있어요.
엄마로서 살아내는 삶이 가끔 힘들 때마다,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며 힘을 내고 있답니다.
제가 아카시아 향기로 엄마와의 추억을 기억하듯,
과연 내 아이는 어떤 향기로 저와의 추억을 떠올릴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사진출처 -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