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는 해야 하는 거지?
"허허허! 사위들이 오면 잠 잘 방은 있어야지!" 하며 웃으시던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때 동네에서 제일 멋진 집을 지으셨다. 동네에서는 우리 집을 "모르테기 집"이라고 했다. 제주도 사투리로 동산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빠는 그 동산의 돌들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키며 모르테기에 양옥집을 지으셨다.
제주는 땅을 파면 돌이 무척 많다. 오래전에 한라산이 폭발하면서 용암이 흘러내려 제주도가 생겨서 그렀다고 한다. 그래서 제주에는 돌담이 많다. 그렇게 땅을 파면 흙보다 돌이 많은 곳이 제주인 것 같았다.
6.25 사변 때 북에서 피난 와 제주에 정착한 아빠는 그 동산에 첫 번째 집을 스리트집을 지으셨다. 전쟁 후 물자가 없기에 안은 벽돌과 나무로 지붕은 스리트를 덮은 집을 짓으셨다. 나도 그 첫 번째 스리트집에서 태어났지만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새로운 양옥집을 지으셨다.
옛날에는 농사를 지으며 살았기에 자식들이 많아야 농사에 도움이 되니 많이 낳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7남매이다. 우리 첫째 둘째 형부네도 9남매, 10남매 하니 우리 집만 형제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아빠는 학수고대하면서 세 번째 오빠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고 한다. 그렇게 아빠는 옛날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빠는 금상아들이 되었고 아들 하나는 불안하니 아들 하나를 더 낳아한다고 일곱 번째까지 낳으셨다. 나는 일곱 번째 남동생을 둔 6번째 막내딸이 되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남동생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리 집도 9남매, 10남매도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아빠가 사위들이 오면 잠잘 방을 만들어야겠다는 숙원이 두 번째 집이 되었다.
처음에는 2층집을 지으려고 했지만 집에 정원이며 자재를 최고급으로 짓다 보니 2층은 나무 계단까지만 짓고 위를 문을 만들어 다음에 올리기로 했다. 아빠는 단층 양옥집을 이층으로 올릴 숙원 사업을 계획하셨지만 남동생이 결혼하면서 제주에서 정착하면서 이층을 올리는 대신 감귤 하우스를 지어줬다. 그러고 보면 아빠의 숙원 사업은 오빠나 남동생이 해야 하는데.
부모님이 떠나고 이 진청집은 이층을 짓지 않고 내버려 둬서 그런지 손볼 때가 많아서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 친정 집 대신 이제는 오빠네 집이나 동생네 집을 들렸다가 아빠가 지은 집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막내딸은 아빠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서울에 있는 언니, 형부, 조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집에 다시 왔으면 좋겠다.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조카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그래서 나에게는 이것이 숙제처럼 다가왔다. 작은 아들이 건축생이니 할아버지의 숙원 사업을 이루어 줄 수 있을까 기대하지만 나는 남편을 더 믿고 싶다. 나의 행동력과 남편의 지략과 아들의 디테일이 아버지의 숙원 사업을 이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