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라는 책 제목을 보면서 '나는 행복하지만 글을 쓰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이 궁금했다. 그러나 나는 행복이란 마술 공연에서 최면에 걸려 살았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술 공연 속에서 나는 행복하고 싶어서 그저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도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서 글을 쓰고 있었다.
행복하기 위한 몸부림을 치면서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내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를 찾기 시작한 것이 책이었고 글쓰기였다. 그렇게 초라하게만 보였던 50이 넘은 엄마는 5년이란 시간 동안 나를 찾기 위한 시간은 쉽지 않았다.
예전에는 내가 있지만 나를 잊고 살기에 급급한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찾으며 행복에 최면을 걸고 있었다. '행복이라는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최면을 걸기기까지 수많은 시간을 책과 글을 쓰며 싸웠다.
나는 동화 속 신데렐라가 되고 싶었다. 다락방에서 탈출하듯 그렇게 시댁에서 도망치고 살고 싶었지만 다시 12시가 되면 나의 본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책이라는 유리 두구를 신고 춤을 추었고 마법에 풀려도 그 책이 나를 신데렐라로 살게 해 준다는 것을 믿고 싶었다. 그렇게 신데렐라 동화처럼 행복의 마술에서 깨어났지만 나는 그 행복을 기억하기에 지금은 행복할 수 있다.
남편은 나를 위해 그래도 깨끗한 작은 나 홀로 아파트를 발견하고 기뻐 보여줬다. 우리는 1년 동안을 백일 된 둘째와 4살 된 큰 아이와 한라산을 넘나들었다. 다행히 음식을 맛있게 먹는 나를 엄청 예뻐해 주시는 시삼촌이 전세자금을 빌려주면서 1년 후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남편이 멀리서 일을 잡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얻어걸렸다. 그렇게 분가했지만 더 많은 눈물의 강은 나에게 흐르고 있었다.
결혼하고 안정을 잡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숱한 시간과 싸운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혼은 어른이 되어가는 가장 훌륭한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살지 않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이 어느새 나를 성숙한 한 사람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나의 아픔을 책을 읽으며 한 자 한 자 글을 쓰며 위로받고 치유할 수 있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할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을 읽고 나서는 나도 행복하지 않아서 글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신데렐라는 마법에서 깨어나면 똑같은 현실이 되었지만 결국에 왕자님과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은 나에게 무엇을 말해주는지 생각하게 했다.
아직도 나는 최면에 걸린 신데렐라에서 남편이 왕자님인가 생각하다 깬다. 그러나 언제나 아침이 되면 행복한 글과 책을 읽고 춤을 추며 나를 최면하고 있었다. 신데렐라처럼!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를 읽고 나니 책이 나에게 미소 지으며 윙크한다. 함께 내 안에 있는 상처도 살며시 고개를 들며 반가웠다. 그리고 두 손을 꼭 잡고 싶었다.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를 읽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