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태찌개!
"아, 이것은 당신이 좋아하는 거잖아!" 하며 내가 말했지만 남편은 "내가 줄 때 먹어!"라고 했다. 남편과 밖에서 동태찌개를 먹으면서 친정아버지랑 밥을 먹는 것 같았다. 딸은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한다고 하더니 남편이 이제는 자상한 아빠처럼 변해가나 싶었다.
우리 부부는 요즘 밖에서 집밥을 먹고 싶으면 동네 근처 동태찌개집에 간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이라 저녁을 밖에서 먹고 산책하고 돌아오기로 했다. 그렇게 동태찌개를 시켜서 끓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밥과 반찬과 두부를 먼저 먹었다. 동태찌개가 한소끔 끓여지니 남편은 먼저 동태 대가리를 자기 그릇에 넣더니 내 국그릇에는 가시가 잘 바리는 동태 중간과 꼬리 쪽 동태를 주었다.
우리 아빠는 엄마가 생선 머리를 좋아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시 어머니도 옥돔을 구우면 옥돔 머리가 고소하다고 드시면 며느리인 나도 옆에서 다른 생선 머리를 다듬어 먹었다. 어른이 대가리를 드시는데 며느리는 몸통의 살을 날름 먹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엄마도 시어머니도 나도 머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빠는 생선 조린 국물만 드셨다. 물론 살은 우리들이 잘 발라 먹었다. 그러고는 아빠는 국물이 맛있다고 하며 "잘 먹었다"했다. 옥돔 새끼를 제주도에서는 어랭이라고 한다. 작아도 싱싱해서 간장만 넣어도 졸인 국물맛이 감칠맛이 나서 맛있다. 지금도 가끔 남편이 낚시를 할 때면 갯바위에서 잘 잡히는 작은 옥돔새끼인 어랭이를 조릴 때면 아빠 생각이 난다.
어랭이는 작은 생선이라 머리는 가시가 많아 아무나 먹을 수 없어서 엄마가 발라 드셨고 아빠는 국물만 드시고 우리들은 맛있게 생선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부모는 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있다. 나도 엄마가 되니 남편이나 아이들이 밥투정을 하면 짜증 나고 아이들이 밥을 잘 안 먹으면 제일 속상하다.
캐나다에서 직장 다니는 아들은 금요일 점심에 회식이 있다고 했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코스 요리로 잘 나온다고 했다. 아들의 보스의 보스는 아들보고 그 모임에 자기는 갈 수 없으니 내 몫까지 잘 먹으라고 얘기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래도 적당히 먹어라! 안 그러면 집에서 굶고 사는 줄 알면 어떡하니!" 하며 말했다.
아들은 웃으면서 "우리 부서는 아줌마들이 내가 잘 먹으면 엄마같이 흐뭇해하실 거예요"라고 했다. "그래 엄마들은 아이가 밥을 잘 먹으면 다 좋아해. 엄마들은 아이 밥 먹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지!" 그러면 회식 때 "우리 엄마는 내가 밥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해서 잘 먹어요라고 해라!" 하며 나는 웃었다. 아들은 다른 사람이 남긴 음식도 남기지 않고 다 먹기 때문이다.
음식 얘기를 하니 우리 아들처럼 밖에서 외식을 하면 둘째 언니도 밥상에 있는 반찬 한 개도 남기지 않는다. 음식이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기에 나도 뭐든지 맛있게 먹는다. 가족들과 한정식집에서 밥을 먹을 때면 둘째 언니는 잘 살아도 아들처럼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는 기억이 났다. 언니도 음식을 귀하게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요즘은 학교 급식뿐만 아니라 뷔페나 한정식에 반찬이 많이 나온다. 이 음식들을 깨끗이 다 먹는 문화가 아니다 보니 음식이 많이 남는다. 예전에 우리 친정어머니는 남편이 국 건더기를 먼저 먹고 국물은 나중에 먹으려고 했는데 먹으면 또 주고 또 줬다고 하면서 말한 적이 있다.
중국에서도 손님이 음식을 남기면 잘 먹었다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나도 학교에서 급식을 먹을 때면 언제부터인가 국물만 남기고 깨끗하게 먹는다. 국물이 남을 때는 국이 맛이 없을 때이다. 이렇게 우리 식구들은 깨끗이 비우는 것이 잘 먹는 것인데 말이다. 아들은 또 회식 때 어떤 해프닝을 만들었을까 궁금해진다.
금요일 저녁 동태찌개와 밑반찬을 깨끗이 먹는 나를 보며 남편은 그만 먹으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잘 먹었습니다"하고 주인아줌마에게 인사하고 나왔다. 주인은 국물만 남은 동태찌개를 정리하며 우리 부부가 알뜰하다고 생각할까 하며 웃음이 나왔다. 비린 한 생선 냄새도 날릴 겸 우리는 바닷가로 산책을 갔다.
바닷가는 비릿한 냄새보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겨울바람이 부니 산책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도 집에서 밥을 먹었으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남이 해준 밥을 집밥처럼 맛있게 먹고 이렇게 산책할 수 있어서 나는 좋았다. 나이가 들면 이렇게 밖에서 밥을 먹고 산책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남편 손을 더 꼭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