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힘들면 나중이 편하다.
아침에 눈이 쌓였다. 해돋이를 함께 보기 위해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에 가려면 눈이 내리면 벌벌 떨면서 가야 한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눈이 내린다고 했는데 다행히 흐리지 않고 해가 나와 쌀쌀해도 눈은 내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안개 눈이 길가에 휘날렸다. 눈이 내리면 휴일인데 집에 있어야 하는데 다행히 휘날리던 안개 눈도 내리지 않았다.
남편은 친구들에게 석화 굴을 먹게 해 주겠다며 굴과 가리비를 사서 놀려 갔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해준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안 했었다. 친구들이 굴을 먹고 싶다는 말을 듣고 "쪄서 먹으면 돼!"라고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친구는 "그 석화를 아내가 씻으니까 너는 먹었겠지!" 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자기가 석화와 가리비를 열심히 씻겠다고 하며 갔다.
친구가 우리보다 좋은가? 아니다. 석화를 먹고 싶다고 하길래 촌놈들에게 우리는 잘 먹는데 자랑질을 한 덕분이었다. 남편을 구워 삼는 방법을 이제는 나도 터해야겠다. 하지만 남편이 나가서 나는 아들과 데이트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들은 내가 해 준 밥 말고 다른 것을 먹고 싶다고 하길래 나와 아들은 음식을 고르기 시작했다. 배달음식보다 바람도 쉴 겸 밖에 나가 먹기로 했다. 둘째는 나와 식성이 비슷해서 해물을 좋아한다. 둘이는 여러 메뉴를 고르고 고르다가 아귀찜을 먹기로 했다.
점심이 한참 지나고 저녁보다는 이른 3~4시라 집 근처에는 브레이크 타임이라 좀 멀리 해안가에 있는 추천 맛집으로 갔다. 2인분을 시키고 싶었지만 4인분이 먹을 음식이 나왔다. 할 수 없이 싸갖고 왔다. 아빠는 친구들과 4만 원어치 굴과 가리비를 사서 5명이 먹는다고 했는데 우리는 둘이서 3만 원이면 먹을 수 있는 것을 오만 원을 시키면서 미안했다.
아들은 동네에서 친구와 소자를 시켜서 먹었는데도 남았는데 하면서 메뉴에 소자가 없어서 우리는 중자를 시켰다. 요새 아귀가 비싸서 아귀보다 내장을 많이 넣는데 중자 아귀찜에는 중간 크기에 아귀 한 마리가 들어 있는 듯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 먹지 못하고 싸갖고 왔다. 하지만 나는 아들과 둘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5만 원이 아깝지 않았다.
오랫동안 우리 부부는 아들과 말이 없이 지냈다. 중학교 이후로 친구들을 좋아해서 함께 할머니 집에도 가지 않았다. 평소에는 학교 일로 바쁘고 대학생이 되니 새벽에만 들어오고 밥을 먹을 때면 핸드폰만 보았으니 말이다. 여름에 큰 아들과 우리 가족들이 함께 놀려 갔었지만 같이 이야기했지 둘째와 진솔한 이야기를 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서 좋았다. 음식 하느라 분주하지 않아 아이와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시간을 돈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오늘 아들과 밖에서 외식을 하면서 나는 시간을 돈으로 산 것 같았다. 앞으로도 종종 여행을 하면서 가족들과 함께하며 시간을 돈으로 사고 싶다.
지금 힘들면 나중이 편하고 지금 편한 것을 선택한다면 나중에 힘들 수 있다는 어느 유튜브에 말이 갑자기 생각난다. 한 해 동안 우리와 아이들이 힘들 때면 나중에 편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또 한 해를 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