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딸이었고 엄마였다.
아침에 눈이 내리니 나는 모자, 털 목도리, 따뜻한 장갑을 꼈지만 겉 옷은 교실에서만 지내니 패딩대신 스워터가디건을 입고 유치원에 갔다. 유치원 선생님은 잠깐 눈 구경하러 나간다고 했다. 장갑이 없는 아이들은 실습용 목공 장갑을 끼고 나가 신나게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었다.
나는 패딩을 입지 않아 추울 줄 알았지만 아이들과 눈싸움을 하니 춥기는커녕 더웠다. 교실에 들어와 보니 한 아이 바지가 젖어 있었다. 선생님은 그 아이의 바지를 찾아서 주면서 입고 오라고 했다. 유치원 선생님은 아이들이 7살이라 스스로 할 수 있게 가리키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눈 놀이에 옷이 젖어 갈아입는 풍경을 지켜보다 옛날 생각이 났다. 그날도 오늘처럼 싸라기 눈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둘째 형부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면서 언니는 변호사 사모님 답게 멋진 명주 한복을 입었다. 눈이 날리는 날 얇은 한복을 입은 언니를 본 아빠는 조용히 사무실을 나가 분홍 내복을 사 갖고 오셨다.
제주는 서울보다 춥지 않지만 바람이 불어서 서울 사람들도 제주가 춥다고 했다. 캐나다에 살던 큰 아들도 구정 때 제주에 왔다가 추워서 깜짝 놀랐다고 했었다. 그렇게 언니는 사무실에 들락 거리는 손님에게 인사하느라 열린 문에서 바람을 맞고 있었다. 손님들과 인사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춥다고 말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아빠는 그런 딸이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되어 밖에 나가 내복을 사서 들어오신 거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기침이라도 한 번 하면 아빠는 누워 계시다 오토바이를 타고 2킬로를 달려 약방에 가서 감기 약을 사 오셨다. 이런 아빠의 세심함 때문인지 나도 우리 형제들도 아빠를 많이 닮았다. 부모는 다 이런 마음일 거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다음에야 그 마음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6.25 때 월남을 하고 다시 가정을 꾸려서 2남 5녀의 막내딸인 나를 낳으니 비행기를 타러 갔을 때 보호자가 할아버지냐는 말을 들었다. 그때 나는 "아니에요, 저희 아빠세요!" 할 건데 그러지 못했다. 그때 아빠가 얼마나 서운했을까?
그런 딸이 결혼하고 아이가 아이를 키우고 살아가느라고 정신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그렇게 애달프게 생각했던 것처럼 부모님도 똑같았다는 생각을 했을 때 나는 가슴이 아프게 울었었다. 눈이 날리는 날이면 아빠가 생각나고 아이가 애달프게 생각되면 엄마 생각이 난다. 나는 딸이었고 엄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