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글 쓰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by 글지으니


저녁을 준비하는데 전화 한 통화가 왔다. "잘 지내시죠! 네, 잘 지내죠?" 그런데 웬일로 전화를 했어요. "아, 우리 반 담당 실무원 선생님을 아세요?" "아, 그분은 아이들을 잘 다루고 쿨한 선생님인데, 왜요?" "네 그분은 세심하게 저를 챙겨주시고 좋으신 분 같아요? 그런데 그분이 나에게 "무언가 불안해 보인다고 하네요"


그 선생님은 방학 전 힘든 특수반에서 수업하다가 한 아이가 던지는 책에 한 아이 이마에 상처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우리 아이들이 사고는 한순간에 일어날 수 있기에 매의 눈으로 보다가도 한순간에 일어난다. 그래서 위험의 요소가 있는 것은 피하고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연 방지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일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아이의 특성을 잘 파악해서 그 패턴이 생기지 않게 주시하는 것 밖에 없다.


나는 그 선생님과 같은 종이협회에서 배워서 같은 공감대가 있어서 같이 여러 번 차를 타고 집에 가면서 학교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때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말이 있듯이 아이들을 하교시키면서 눈이 마주칠 때면 뭔가 불안한 눈빛이 엿보였다.


나는 전화로 "선생님처럼 따뜻한 성격이라면 아이들을 조카처럼 세심하게 잘하실 것 같은데, 자신감 있게 하세요."하고 말했다. 그 선생님은 "내일 수업이 끝나고 같이 차를 타고 갈 수 있다고 전화했어요"라고 했다. 같은 방향으로 가기도 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선생님과 여러 번 차를 타면서 이런저런 많은 사연을 이야기한 적이 많다. 그래서 어제 전화에서도 자신은 "아이를 기른 적이 없으니"하는 말이 툭 나오더니 말꼬리를 내렸었다. 그래서 나는 조카처럼 하라고 말을 했었다. 결혼했지만 아이가 없는 것도 시집에서 동서 간에 웃픈 이야기도 함께 했었다. 나도 오픈 마인드라 허심 탄하게 서로 힘든 이야기들을 나누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선생님은 코칭에 관한 대학원을 마치고 심리 상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다.


힘들어하는 그 선생님과 오늘은 같이 차를 타고 가면서 내 이야기를 쓴 책을 주면서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글을 써보라고 하고 싶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무엇이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 건지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누구보다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나를 이해하고 위로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루아침에 나의 자존감이 올라가지 않고 자신감이 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첫걸음이 책이고 글을 쓰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했다>라는 책 제목 하나만으로 나를 위로했고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을 읽으며 나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렇게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읽어도 생기지 않았지만 꾸준히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그 처음이 나는 글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도 아픈 과거가 있으니 나도 그럴 수 있고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고 조금의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이 어떠한지 그 생각을 글로 쓰면서 알 수 없었던 그림자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자신과의 대화를 하는 글쓰기를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 차를 타면 선생님과 눈이 마주칠 때면 하회탈처럼 눈웃음이 정말 잘 어울리고 예쁘다고 말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