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생각하니
어릴 적 나는 나이팅게일과 헬렌켈러의 설리반 선생님을 존경했다. 어렸을 때는 위인전을 읽으며 나는 아픈 사람을 보면 가면 있지 못하고 반창고라도 붙여줘야 했다. 나이팅게일은 전쟁터에서 아픈 사람들을 보살피는 것을 보며 솔직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때쯤 나는 설리반 선생님을 더 좋아했는지 모른다.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말이 있다. 그렇게 나는 나이팅게일보다 설리반 선생님이 더 되고 싶었는지 특수 아동들에게 방과 후 미술을 가리키고 있다. 특수학교 선생님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작은 사랑을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어 다행이다.
나는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집이나 사업장을 꾸미는 디스플레이어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을 하기 전까지 내 일에 전문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나는 남동생이 결혼을 한다는 말에 나도 허겁지겁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하면서 내 남편은 내가 못할 꿈을 키워 줄 사람이었으면 했다. 하지만 인생은 요지경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결혼으로 나를 생각하기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사는 것이 더 급급했다.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가 되면서 나도 챙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 보니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모르고 하루하루 살고 있었다. 그래도 한 가지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랑이 가득한 집을 만든다는 것은 분명했기에 오랫동안 나를 그런 삶을 위해 애쓰고만 살았다. 그래도 부모님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덕분에 나는 엄마로 아이를 사랑하듯이 순수한 아이들을 좋아했다. 결혼 전에는 미술교습소를 하면서 결혼하면서 내 아이들을 키우고 예전처럼 또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이를 돌보거나 가르치는 일이 되었다. 이런 나를 보며 유치원 선생님 같다는 말을 들었었다. 하지만 나는 유치원 선생님도 아니고 특수 선생님도 아니다. 남들은 안정된 직장에서 자신이 하는 일로 다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는 종종걸음을 치면서 헉헉 거리는 것 같았다. 그런 내가 초라하고 안쓰러워 보였다. 남들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열심히 사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50 중반에 돼서야 나도 남들처럼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할지를 찾으면서 글을 썼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도 없고 자존감도 무엇인지 모르고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사랑해주어야 할 내가 정신줄을 놓고 나와 다른 남편을 받아들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싸워 이겨야 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남편이 있어서 내 성장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글쓰기의 교보재가 되어 주어 고맙기까지 하다.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 글을 썼기에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내가 이해받고 싶은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렇게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오늘도 또 다른 공간에서 사랑을 주고받고 싶어서 선물 같은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