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쪽에 남아 있던 조각들
웹디자이너로 비슷한 작업을 반복하던 어느 날,
매너리즘에 빠진 나를 문득 깨운 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오래된 마음이었다.
현실적인 소비에 익숙해진 일상들을 잠시 내려놓고서라도
그 마음을 따라가 보고 싶었다.
그만큼 간절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 못 견딜 것만 같았다.
그 무렵, 나는 프리랜서로 대기업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같이 일하던 디자이너의 친한 후배가
일러스트레이션 학교를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학교는
일러스트레이터와 그림책 작가들을 다수 배출한 곳이었다.
마침 그곳에서 7기 수강생을 모집 중이라는 말에,
마음이 솔깃해졌다.
지원서는 일반적인 이력서와는 달랐다.
좋아하는 작가와 그 이유, 자기가 그린 낙서나 그림, 글 등을 함께 제출해야 했다.
대학 졸업 후 줄곧 컴퓨터로 작업만 해온 터라,
그림을 놓은 지 오래였고, 낙서해둔 것도 딱히 없었다.
무엇을 제출해야 할지 막막했다.
고민 끝에 떠오른 건,
싸이월드에 써놓은 글과 사진으로 만든 이미지 같은 것들.
그것들을 모아 지원서를 채웠다.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마음보다도,
지원서 안에는 그림 뒤에 숨어 있는
내면의 질문들에 답하려는 흔적이 담겨 있었던 것 같다.
만족스럽진 않았다.
그래도 떨어지면 다음에 다시 지원하지, 하고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결과는 — 합격.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 일하기 싫어서 겨우겨우 일을 버티고 있었던 나였는데,
내가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그건 마치,
잊고 있던 꿈을 다시 꾸게 된 것 같았다.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를 만큼,
행복했다.
앞으로 나에게 시작될
고난의 행군을 전혀 모른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