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작업의 시대를 지나, 디지털과의 첫 만남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공부는커녕 입시미술도 진절머리가 날 만큼 싫어졌던 시기였다.
앞으로 뭘 해야 할까 막막하던 어느 날, 우연히 신문에서 ‘디자인 스쿨’ 광고를 보게 되었다.
꽤 이름이 알려진 학원이었고, 알아보니 1년 안에 실무 중심으로 디자인을 배워 바로 취업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었다.
한창 신인 루키로 주목받던 이정재가 인테리어과에 다녔다는 소문도 있었다.
학원은 지금의 신사동 가로수길 근처, 압구정과 강남역 사이 작은 디자인 사무소들이 몰려 있던 골목에 있었다.‘월드북’ 서점이랑 ‘모델라인’ 모델 학원도 근처에 있었는데,
잘생긴 모델 지망생들을 마주치는 건 그때 골목에선 꽤 흔한 일이었다.
디자인 과정은 정말 다양하고 촘촘하게 짜여 있었다.
기초 일러스트, 편집디자인과 쿽익스프레스, 초창기 컴퓨터그래픽 프로그램들, 상품디자인, 에어브러쉬, 광고일러스트 등 거의 모든 디자인 분야를 빠르게 훑으며 배울 수 있었다.
학생 연령대도 20대 초반부터 30대 후반까지 다양했고, 분위기는 자유롭고 진지했다.
입시미술과는 완전히 달랐고, 처음으로 ‘이 길은 내게 맞는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시작한 만큼 집중력이 생겼고, 수업도 습자지처럼 빠르게 흡수해 나갔다.
광고 수업만큼은 이상하게 점수가 잘 안 나왔다.
190이 훌쩍 넘는 마른 체형에, 말끝마다 날을 세우던 깐깐한 선생님이 자꾸 빠꾸를 놓는 통에—
다른 수업에 비해 칭찬 한 마디 없는 지적과 그 깐깐함에, 속으로는 분기탱천!
그런데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쌤 나름대로는, 츤데레처럼 나를 귀엽게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그 깐깐함 다 뚫고, 나중엔 A 받아서 깔끔하게 마무리됐다.
선생님과의 관계도 학교와 달리 수평적이라, 자유롭게 묻고 배우며 가까워질 수 있는 분위기였다.
당시엔 선생님과 썸 타는 학생들도 꽤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늘 한 발 늦게 그런 얘기를 듣고야 알던 타입이었다.
그때는 수작업에서 컴퓨터 작업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였다.
지금은 컴퓨터로 간단히 처리할 선 하나, 박스 하나를
0.3 노트링펜으로 먹선을 따고 먹으로 명암을 채우며 일일이 그려야 했다.
복잡한 옵티컬 아트를 그리며 선 연습과 먹 작업을 반복하는 노동집약적인 시간이었다.
삐져나온 선은 커터칼을 살짝 눕혀 긁어내며 지웠고, 그 속에서 섬세함과 인내, 작업 순서의 중요성을 익혔다.
컴퓨터는 맥킨토시 클래식 II.
일러스트레이터 2.5로 작업하다 보면 갑자기 화면에 폭탄 아이콘이 뜨며 꺼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느린 마우스로 하나하나 다시 그려야 했고, 저장조차 못 한 채 날아간 작업물은 정말 '킹받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밤새워 과제를 하며, 나는 어떤 분야에 흥미가 있는지도 조금씩 알게 되었고, 졸업 전에 가장 먼저 취업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 시절 배운 아날로그적이고 손이 많이 가는 방식은 지금의 디지털 환경에서도 큰 힘이 되었다.
전체 과정을 먼저 조망하고 나니, 디자인이라는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감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고, 낯선 작업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 무렵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책이 유행했지만,
내게는
“정말 배워야 할 디자인의 기초는 K 아트스쿨에서 다 배웠다”
이때 익힌 작업 방식과 마인드는 20대의 첫 시작했던 나에게
그 이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대학에 다시 들어갈 때도 중요한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일머리와 완성도의 기준도 노동집약적인 훈련으로 내 손끝에서 길러졌던 것 같다.
지금은 그 학원은 경영난 속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내게는 아직도,
그곳에서 디자인의 문을 처음 열었던 20대의 내가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