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피해자 할머님 손글씨 폰트 제작후기
2016년 2월 일본군'위안부'할머님들께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고자 하는 취지로 '나비레터'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프로젝트 목표는 할머님들을 또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기 위해 할머님들 손글씨를 폰트로 만들어 널리 알는 것과 실질적인 도움을 위해서 손글씨가 담긴 물품을 판매하여 수익금을 후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스토리 펀딩도 성공하고 PC용 폰트도 얼마 전 무료공개를 시작했습니다. 기록을 위해 폰트제작 후기를 시간흐름으로 적어봅니다.
1.
처음 할머님 들을 뵈었을 때는 2016년 2월입니다.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사람들과 나눔의 집, 정대협을 방문하여 관계자 분들과 프로젝트를 공유하고 나눔의 집에선 할머님들께 인사드리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과연 글씨를 쓰실 수 있을까?”, 연세가 많으시고 기력이 쇠하신 분도 많으실텐데..” 우려가 있었지만 다행히 가능하신 분들을 추천받았습니다. 이렇게 추천을 받는 분들이 이옥선 할머님, 길원옥 할머님이십니다.
2.
자필폰트이므로 우선 할머님들께서 글씨를 쓰셔야 합니다. 필요한 글자는 500여자. 우리들도 글씨 쓸 일이 점점 드물어지는데 고령의 할머님들은 오죽하실까요? 할머님들께서는 오랜만에 글씨를 쓰며 힘들어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려워 하시면서도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글씨를 쓰셨고 프로젝트를 함께한 김현선 대표는 나눔의 집과 정대협을 수차례 오가는 열정으로 글씨들을 수집했습니다.
3.
필요한 글자들이 모아졌습니다. 이제 본격 제작입니다. 할머님들의 글씨를 스캔하고 다듬기 시작합니다. 글씨에는 심이랄까 뼈대가 있고 형태와 크기는 손의 힘이나 필압 등에 따라 고르기도 하고 많이 다르기도 합니다. 많이 다르면 개별 글씨들의 다듬기가 필요한데 글자의 힘을 살리고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할머님들 글씨는 불가피하게 이 다듬기에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4.
1차 다듬기가 끝났습니다. 그 다음 할 일은 없는 글자 만들기 입니다. 만들기로 한 폰트 포맷은 일단 PC용으로 한글 표준완성형 입니다. 한글 표준완성형은 모두 2.350자. 써주신 500여자 이외에 나머지 1,800여자가 더 필요합니다. 이 글자들은 쓰신 글자와 어울려야하므로 500여 글자들의 초,중,종성을 분해한 뒤 좌표지정, 조합작업 그리고 프로그래밍, 추가 다듬기들과 테스트 작업을 거치며 10여 차례 폰트를 만들어본 후 드디어 최종폰트가 나왔습니다.
5.
최종 PC용 폰트에 포함된 글자들은 한글 2,351자, 영문과 기본기호 94자. 이외에 한글 특수문자 + 확장특수문자들 입니다.이 글자들은 폰트와 함께 배포되는 폰트리포트에서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폰트가 나온 시점은 2016년 여름. 나눔의 집과 정대협에 전달되어 사용이 시작됩니다. 이후 8월 13일 나비레터 프로젝트가 공식 런칭되고 스토리펀딩도 성공리에 마치며 12월 31일 일반 공개가 시작됩니다. 여기까지 열달 정도 걸린 셈입니다.
6.
PC용 폰트는 처음부터 무료공개가 원칙이었습니다. 누구나 기억하고 누구나 기록할 수 있도록. 그래서 할머님들의 이름을 그대로 폰트이름으로 하였고 고심 끝에 ‘그녀-’ 라는 수식어를 붙였습니다. 할머님들은 자신의 문제에 용기 있게 다가가신 분들이며 나아가 인간의 존엄을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폰트를 쓸 수 없는 경우는 이에 반하는 경우. 즉 할머님들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권과 보편적 사회정의에 반하는 사용입니다. 이외의 경우는 ‘폰트파일’을 판매하지 않는 한, 재배포도 상업적인 사용도 아무 제약이 없습니다.
7.
공개 후 많은 분들이 이 폰트들을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해 하셨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폰트들은 [PC용/KS한글 표준완성형]으로 만들어진 폰트입니다. 폰트에서 스마트폰용과 PC용은 성격이 전혀 다른 폰트라서 폰에서 사용하기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기에 스마트폰에서 합법적인 정식사용을 위해선 먼저 새 스마트용 폰트 제작, 그리고 정상적인 유통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정식유통되면 수익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고 사용에도 문제가 없으므로 준비 중입니다.
8.
두 분 할머님들의 폰트는 나왔습니다. 이후 더 많은 분들의 폰트를 더하고자 하는데 어찌될지 미지수입니다. 고령에 따른 부분도 크고 한글을 잘 써본 할머님들도 많지 않으십니다. 그분들의 청춘과 인생이 송두리째 난도질되던 시기. 일본어로 말하실 수 있어도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조차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몇 분이라도 더 만들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9.
할머님들께서 한 글자 한 글자 글씨를 쓰시며 그 안에 마음의 크기도 담으셨던 것 같습니다. 이옥선 할머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내 글씨를 통해 우리가 받은 모든 고통이 알려지면 좋겠어” 많은 분들이 알아주시리라 믿습니다.
이상이 폰트를 만든 사람으로서 쓴 후기입니다. 수요집회도 못가고 할머님들도 살갑게 못 뵈어서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좀 더 많은 분들에 의해 더욱 많은 곳에 쓰여져 할머님들의 여한을 푸시는데 작게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추신.
폰트는 나비레트 프로젝트 홈페이지에서(https://www.nabiletter.com) 무료 다운 받으시면 됩니다.
들어가시면 더 많은 이야기들을 볼 수 있으니 한 번 방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