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과 퇴사의 기로에 서서(4)

진심으로 좋아했었어, 팀장.

by 행나로

한동안은 매일 밤이 악몽이었다.


매일 밤마다 내 꿈속에 팀장이 나타났다.

어느 날은 내가 하는 것마다 실수투성이었다. 왜 그렇게 되는 일이 없는지 모든 것이 나의 계획과는 반대의 결과를 가져왔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나타난 팀장은 '네가 그렇지'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말들을 뱉어냈다.

어느 날은 아주 이상한 꿈을 꾸기도 했다. 옷이 벗겨진 채로 수치를 당하는 꿈을 꿨는데 숨고 싶어도 숨을 수 없었고, 달리려 해도 도망갈 수가 없었다. 꼭 많은 사람들에게 발가벗겨진 채로 부끄러운 꼴을 보여야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꿈속을 헤매다 눈을 뜨면 커튼 사이로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고 있고 내 옆에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을 괜히 한 번 끌어안아야만 진정이 되었다. 어떤 날은 그런 그를 한참 바라보다 그제야 안심이 되어 펑펑 울어버린 날도 있다. 그렇게 한 달을 넘게 쉼 없이 나쁜 꿈을 꾸니 잠드는 게 두려울 지경이었다.


잠을 자지 않을 때는 머릿속에 끝도 없는 질문이 떠올랐다.

샤워를 하는 내내, 청소를 하다가도, 심지어는 누군가와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다가도

'나한테 도대체 왜 그랬을까?'
'나를 왜 그렇게 미워했을까?'
'그 사람은 내가 떠난 지금도 누군가 미워할 사람을 찾고 있을까? 아니면 그냥 내가 싫었던 걸까?'

하지만 모두 내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아마 그녀(혹은 그)도 답할 수 없는 질문 같았다.

그럼 나도 이 질문을 계속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해서 질문했고 그러면 모든 상황이 정지된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은 또 이런 꿈을 꾸었다.

외근을 다녀온 날이었나 햇살이 따뜻했다. 꿈속은 너무 평온했고 팀장과 나는 웃으면서 어색하고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이런 날들이 분명 있었다. 함께함에 감사했던 그런 날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분명 존재했던 날들이었다.

그러다 꿈에서 깨어났고 괴롭힘을 당하지도 부끄러움을 당하지도 않았지만 이 꿈도 분명 악몽이었다.

이 날은 신랑을 끌어안지 않았고 한참을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숨죽여 울었다.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꿈이었다.

나는 한 사람으로서 팀장을 참 좋아했었다.

그래서 부당했던 대우들이 더 마음이 아팠던 거다.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봤고 내게 상처를 준 어른들도 한 둘이 아니었다. 대부분은 하루이틀 기분이 상하고 나면 잊히는 상처들이었다. 마음껏 미워할 수 있었고 한바탕 욕하고 나면 마음이 시원해지고 기억에서 잊힌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팀장은 그렇지 않았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일하고 성취하던 순간들, 같은 취향을 공유하며 우정을 나눴던 시간들이 분명 있었다. 심지어 처음 면접을 보러 회사에 갔을 때 나를 바라보던 팀장의 눈빛도 기억했다. 언젠가는 이 조직을 떠나게 되더라도 가끔은 인생의 고민을 나누고 술 한잔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되길 바랐던 것 같다. 이런 모습으로 끝내고 싶은 관계는 아니었다.


휴직을 하고 회사 밖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말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나에게 공격성을 더 길러야 한다고 했고 누군가 부당하게 대하면 언성을 높일 필요도 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수록 더 어렵게만 느껴졌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그 시간들까지 부끄럽게 느끼고 싶진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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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여름이 지났고 서늘한 가을 기운이 느껴지던 어느 밤,

더 이상 팀장은 내 꿈에 나타나지 않았고 이후로도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았다.


'이제는 인생의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겠구나'라는 안도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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