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과 퇴사의 기로에 서서(5)

나를 사랑하는 것들과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곧 나이기 때문에

by 행나로


휴직기간 동안 나는...

아침에는 수영을 갔고 간단한 집안일들을 했다.

날이 좋으면 산책이라도 할 겸 유명한 카페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책 한 권을 더 사거나 문구점에 들려 필요는 없지만 예쁜 것들을 하나씩 사 오기도 했다.

그렇게 저녁즈음 집에 돌아오면 잠시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며 게으름을 피우고 퇴근한 신랑과 한참을 함께 까불다가 잠들기 전까지 소설책을 읽었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운 일상이 반복되고 지루하다는 생각도 없이 수개월이 지나갔다.


가끔은 명함으로 나를 소개해야 하는 자리에 가야만 했는데 그럴 때마다 문득 부끄러워지곤 했다.

△△회사의 OO팀, 행대리.

한 때는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로 나를 설명하는 것이 즐거운 적이 있었다.

이 명함이 곧 나를 설명하는 전부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는 가장 약해 보이는 이를 위해 꽤나 머리 쓰는 일을 한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사명감 있고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처럼 바라보았고 아주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그럴 때마다 어떤 '우월감'같은 걸 느꼈다. 내가 오랜 시간 어렵게 공부해서 얻은 성취이니 남들은 쉽게 따라 하지 못하는 일이라는 착각을 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일을 하는 동안에도 내가 속한 집단과 다른 집단의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순간이 생기면 나는 두 집단 간의 대립구도를 쉽게 만드는 사내 분위기에 동조하는 내가 우습다고 느껴졌다. 또 어떨 때는 그 다른 집단의 입장이 내가 속한 집단의 입장보다 더 이해가 되는 순간들도 있었고 충분히 두 집단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사는 내가 될 수 없었고 나도 딱히 △△회사로 나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카페인을 들이부어가며 과도한 각성상태로 하루 종일 일생각만 하고 퇴근 후에는 연락할 사람 하나 없어 자극적인 SNS, 자기 계발서나 들여다보며 만성적인 외로움과 불안을 숨기는 애처로운 모습이 정말 내가 바란 인생일까?


나는 회사보다 건강한 몸과 마음, 사랑하는 가족들이 더 소중했다.

좋은 것을 먹고 운동을 하며 나의 몸과 마음을 아낄 수 있어야만 진짜 나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건강을 해치며 일만 하면서 살아요' 누군가가 자랑스럽게 내세운 생활신조는 나에게 '저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인정욕구만 강해지고 있네요'라고 들려서 딱하게 느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쫓기보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안위를 묻고 함께 울고 웃으며 시간들을 쌓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런 것들을 회사에서 은퇴한 후 노년이 되었을 때 되찾고자 하면 이미 모든 기회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온전히 쉼을 누릴 수 있던 휴직기간이었다.

수영을 가면 물속에서 자유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고요한 가운데 나의 호흡과 물살을 가르는 나의 움직임만 느껴졌다.

사람이 많지 않은 카페에서 자신이 만드는 커피에 대해 차근히 애정을 담아 설명해 주시는 사장님들을 만나면 나도 그 커피를 천천히 소중하게 음미하게 되었다.

매일 밤 30분에서 1시간씩 책을 읽으면 짧게는 4일, 대게는 1주일이면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많은 문장들에서 위로를 받았고 그럴 때마다 일면식도 없는 그 소설가들이 궁금하고 고마웠다.

신랑은 나의 조용한 행복을 가만히 듣다가 내가 고른 수영복을 사주고 가끔 나를 멋진 수영장에 데려다주었다. 또 카페에 함께 가서 맛있는 커피를 함께 즐겼고 내가 책 한 권을 다 읽어갈 때쯤 다음에는 어떤 책이 읽고 싶은지 묻고 자주 새로운 책을 선물해 줬다. 나의 온전한 쉼에 무한한 지지를 보내주었다.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성급한 복직보다 나의 건강을 걱정하고 충분한 휴식을 응원했다.


나는 물속에서 헤엄칠 때 자유를 느끼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소중함을 알고 책 속에서 위로를 얻는,

가족들의 사랑과 무한한 지지를 받는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내가 노력하지 않았지만 감사하게도 나에게 원래부터 주어진 것들인데 내가 애써서 나를 증명하고자 만들어간 모습보다 더 자랑스러웠다.


두 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복직과 퇴사의 기로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나란 존재는 변함이 없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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