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해방이다!
"남은 한 해 4개월 동안 푹 쉬고 내년에 돌아오도록 해요, 행대리.
그때는 다른 부서로 이동할 수 있을 거고......"
휴직을 위한 절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회사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수개월의 시간이 흘러 내가 이곳에 다시 돌아와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었다.
그저 내 인생에서 그 '사람'을 우연히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그랬다.
적극적으로 싸워주지 않는 부서장도 회사도 결국 너를 부당하게 대한 것이지 않겠냐고.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화를 내고 싸움을 거는 것도 결국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기대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나는 팀장의 관심과 기대를 원치 않았다. 그런 것은 화를 내면서까지 얻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휴직 전까지는 연차가 많이 남아있었고 이곳을 떠나기까지 나에게 남은 시간은 2-3주에 불과했다.
그 시간 동안 인수인계서를 작성하고 남은 업무들을 처리했다.
팀장은 남은 시간 동안 나에 대한 유감을 숨김없이 표현하기 시작했다.
업무절차에서 검토를 요청하면 나에게 짜증을 내며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리고 더욱 적극적으로 '행대리 때문에, 행대리 때문에'를 외쳐댔다.
인사평가 검토를 위해 공유캘린더 내의 팀장의 일정을 확인하여 약속 가능한 날짜를 제시하면 말도 안 되는 구실로 나를 궁지에 몰아넣으려 했다.
인수인계서를 제출하여 검토를 받으라는 지시 후에도 검토를 일방적으로 미루었다.
훗날 그녀(혹은 그)는 내가 떠난 후에도 나를 무능한 존재로 만들어 팀원들에게 나에 대해 험담할 구실을 만들 것이다. 이전에 떠나간 모든 이들에 대해 그러했듯이.
어느 날은 자신이 각 팀원들에게 내 휴직 소식을 전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그럼 개인적으로도 각 사람들과 잘 이야기하겠다고 전했다.
그런데 그녀(혹은 그)는 갑자기 팀원들이 모두 모인 주간회의 시간에 이렇게 말해버렸다.
"어제 모두에게 말했듯이, 행대리가 휴직을 하게 되었어요. 알아서 인사들 나누세요"
모두에게 말했듯이?
다른 팀원에게 살짝 물어보니 팀장은 이전날 나를 뺀 모든 팀원들에게 나의 휴직 사실과 내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공지했다고 한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은 내가 팀원들에게 휴직 사실을 개인적으로 알리기 전에 팀장이 먼저 선수를 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인 결과였다.
묘한 기류를 느낀 이들은 개인적으로 연락이 왔다.
떠나기 전 나와 밥을 먹거나 차라도 마시고 싶다고 했다.
내가 입을 떼기 전에 이미 다들 모든 기류를 느끼고 있었고 이 팀에서 가장 오래 있었던 나의 휴직 결정을
팀장이 나 몰래 다른 팀원들에게 소식을 전했고, 제대로 된 작별 인사없이 내쫓듯이 대하는 이유에 대해 의아해했다.
그리고는 각자 이전 직장에서 받아온 부당한 대우를 고백하거나 나의 심신의 안정을 걱정하며 자신들이 잘 아는 심리상담센터를 추천해주기도 하고 작은 선물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회사 밖에서도 지금은 퇴사한 동료들과 퇴근 후 함께 저녁을 먹으며 그녀(혹은 그)에 대해 한마음으로 이야기했고 그렇게 여름이 지나갔다.
"대리님, 혼자라는 생각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대리님을 떠나보내려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해 주세요."
마지막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다시 마주친 팀원은 진심으로 나를 안아주었다.
회사를 등지고 한참을 신호등을 기다렸다.
작열하는 햇빛이 무겁고 뜨거워 마치 내가 아스팔트와 함께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언젠가는 이곳을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떠나고 싶진 않았다.
4개월간의 휴식이 주어지면 모든 시간들을 잊을 수 있을까?
그러면 나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올 용기가 날까?
글쎄...... 그건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뜨거운 햇볕을 피해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마음을 바꿔 버스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겼고 신랑의 회사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30분을 달려 드디어 신랑의 품에 안겼다.
혼자 불 꺼진 집에 들어가지 않고 그에게 달려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을 겪고도 집에 오면 혼자가 되는 삶이었다면... 아마도 내 선택에 끊임없는 의문이 들었을 것 같다.
아무튼, 나는 드디어 해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