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과 퇴사의 기로에 서서(2)

나는 그저 안전한 퇴사를 원했다.

by 행나로

팀장과 나의 관계를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길에서 우연히 만나더라도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칠 사이였다.

살아온 삶의 궤적이 달랐고 지향하는 삶, 추구하는 미래의 모습도 많이 달랐다.

그런 우리가 만나 3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던 건 팀장도 나도 같은 회사를 지원했고 면접을 보았고 그렇게 하나의 소속이 되었을 뿐이다.


팀장과의 인연을 여기서 끊어내고 살아남겠다고 다짐했을 때 회사의 입장에서 냉철하게 생각해 보았다.

'이 회사에서 내가 살아갈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어찌 됐든 회사라는 곳은 관계보다 실리가 중요한 곳이기에 한낱 대리의 생존보다 회사의 이미지와 좀 더 많은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직원의 안위가 중요할 것이라는 아주 당연한 결론이 내려졌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맞고 팀장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한 싸움을 시작해야 할까?'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싸움이 아니었다.

30여 년을 살면서 많은 순간을 투쟁하듯 살아왔고 항상 그 투쟁은 가장 먼저 나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소중한 시간들을 희생시켰다.

나는 살아남는 것이 목표였다.


안전한 퇴사를 꿈꿨다. 하지만 모든 일을 나만 알고 있기에는 억울했다.

회사 밖에서 나의 지지자들을 붙잡고 우는 일도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닌데 이 슬픔을 그들이 나눠갖도록 하는 일은 더 억울했다.

회사 안의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했다. 그리고 조금은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고민 끝에 팀장 몰래 부서장을 만났고 그간의 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팀장이 행대리를 굉장히 믿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행대리에 대한 칭찬도 많이 하던 걸?"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팀장은 소위 윗사람들과 본인이 치켜세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아주 작게 만들고 굽신 거리는 것이 아주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리고는 그들이 없는 자리에서 그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곤 했다.

새벽 4시의 200개의 메일 이후 마주친 날에도 팀장은 윗사람들에게 나를 매우 아끼는 직원인 양 소개하기도 했다. 남들 앞에서 다정하게 연기하며 내 등을 쓰다듬던 손길에 아직도 등골이 오싹하다.

"제가 바라는 것은 그저 안전하게 떠나는 것이에요."

잔뜩 어두워진 얼굴로 부서장은 퇴사보다 휴직을 권했고 이후에 다른 부서로 이동하는 것도 제안했다.

당시에 나는 실리를 추구해야 하는 회사의 입장에서도 싸움을 원치 않았던 나의 입장에서도 충분한 합의점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매일이 숨 막히는 현실 앞에 살고 싶다는 생각 말고는 미래에 어떻게 하고 싶은 지는 생각해 보질 못했다.

매일 밤 울다 잠든 나를 가장 가까이서 보던 남편도 내일이 아닌 오늘 나의 생존을 걱정했다.

그래서 우선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보기로 했다.


그렇지만 또 하나의 관문이 남아있었다.

부서장이 제안한 휴직을 받아들였지만 팀장에게도 상황은 공유해야 했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움켜쥐고 팀장에게 면담을 요청했고 "말하기 어려운 사유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저하되어 휴직을 원하며 이후 다른 부서로 이동을 고려하거나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부서장과 먼저 소통하게 되어 죄송하다"라고 이야기했다.

(어쨌든 조직에서 요구하는 순서는 팀장과의 소통이 먼저 였겠으나... 당신 때문에 떠나겠다는 말을 어찌하겠는가)

"부서장에게 말했다고 해도 팀원의 휴직 결정은 내 권한인데? 그럴 거면 그냥 퇴사를 하지 그래?"

팀장의 논리는 갑작스러운 너의 부재로 추가적인 일을 떠맡을 직원들을 생각하면 휴직을 결정한 네가 이기적이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퇴사를 해도 똑같이 벌어질 상황 아닌가...

지금까지의 상황과 전혀 다를 것 없는 상황이었다. 팀장은 아주 익숙하게 모든 상황을 내 탓으로 만들고 자신의 생각이 아주 합리적인 결정인 것처럼 주장했다.

몇 번이나 당신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저 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조용히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혹은 그)는 나의 휴직을 고민해 보겠다고 면담을 마쳤고 며칠 후 부서장의 결정대로 휴직절차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제 팀장은 남은 시간 동안 나에 대한 유감을 아낌없이 표현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교묘하게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정말 지옥 같던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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