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진 끝이 아니란다. [에이섹슈얼의 경우6]
*"결과는 일주일 후에 문자로 갑니다."에서 이어집니다.
끝날 때까진 끝이 아니다, 이것 또한 끝나리라, 끝이 좋으면 다 좋다, ……. 의미도 쓰이는 상황도 다 다르겠지만 끝과 관련된 말은 참 많다. 그리고 대부분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거나 방심하지 말라거나, 그런 교훈을 주는 말이다. 그런데 그 '끝'이라는 걸, 대체 어떻게 알지.
"안녕하세요. 저희 병원 오신 적 있으세요?"
아니라는 말을 듣자 수납 데스크의 간호사가 능숙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럼 여기 이거 작성해주시고요, "
그리곤 흡사 속삭임에 가까운 질문을 던진다.
"성경험 있으세요?"
각오했던 질문이다.
"네."
안타깝게도 성경험이 있었던 나는 산부인과에 다시 방문해야 했다. 아, 말을 똑바로 해야지. 불행히도 나는 제대로 된 성경험을 갖지 못했기에 산부인과에 다시 방문해야 했다. 자궁경부암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며, 성관계가 매우 유력한 감염경로로 알려진 인유두종 바이러스(HPV)가 나의 세포를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콘돔만 착용했어도 막을 수 있었던 바이러스 말이다. 애석하지만 걔도 나도 콘돔을 챙길 생각조차 못(안) 했던 터라, 나는 자궁경부암 1단계인 이형성증 돌입에 성공했다. 짝짝짝! 박수 말고 내 뺨을 후려치고 싶었다. 아니 세 번 다 내가 맞는 건 억울하니까 걔 뺨도 한 대만 쳐보게 해주세요.
폭력에 가까웠던 Glen과의 성관계가 스물스물 기억 저편에서 기어 나왔다. 몰래 버린 한 줄짜리 임신테스트기로 끝인 줄 알았는데. 비닐봉지를 묶으며 완전히 끝을 맺었다고 생각했던 '경험', 혹은 '추억'은 끈질기게 남아 끝날 때까진 끝이 아니라는 말을 되새기게 했다. 희소식이라면, 많은 경우 자궁경부암은 1단계인 이형성증에서 다음 단계로 진행되지 않거나 자연 치유되기도 한다는 것. 워낙 기술이 좋으니 6개월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검사해주면 된다나? 말이 쉽다. 검사비용은 눈물콸콸입니다.
누군가는 "아니, 가다실 안 맞았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넵... 안 맞았어요.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가진 바이러스는 가다실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종류였기 때문에, 그걸 소소한 위안으로 삼았다. 위안이긴 했나? 여하튼 그렇다. 내 의지로 빼낼 수 없는 바이러스가 언제 다음 단계로 세력을 확장해갈지 알 수 없지만 일단 건강하다. 6개월에 한 번씩 눈물 쏟을 비용을 지불하며 무사하다는 결과지를 기다려야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니까. 그러고보면 끝날 때까진 끝이 아니라는데, 도대체 이 일의 끝은 어떤 형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