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코닉 드링크 콤부차 연대기
검색 엔진을 열고, 검색창에 ‘kombucha girl’을 입력해보세요. 브리태니 톰린슨이란 이름의 한 백인 여성을 전세계적 규모의 짤방 스타덤에 올린 짤막한 틱톡 영상이 나올 거예요. 영상에서 그는 음료의 냄새를 맡고 살짝 주저하다 마신 뒤, 인터넷 역사상 가장 성공한 밈이 된 표정 릴레이를 선보이죠.
#틱톡 #콤부차걸 #대박
가장 먼저 나오는 반응은 찌푸림,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닌데? 괜찮은 것도 같은데?’ 하는 표정으로 홱 바뀝니다. 다시 손바닥 뒤집듯 얼굴이 바뀌며 ‘불호’를 표시합니다. 하지만 결국 의심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호’로 기울죠. 이렇듯 순식간에 왔다 갔다 하는 그의 풍부한 표정에 전 세계 네티즌이 열광했습니다.
이 영상을 어쩌다 찍었냐는 물음에 브리태니는 “이 박테리아 물이 도대체 뭔지 궁금했다”고 답합니다. 텍사스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하게 은행에서 일하던 그도 인터넷에서 불던 콤부차 바람을 피할 수 없었던 거죠. 그러게요, 콤부차가 뭘까요? 그리고 도대체 무슨 맛이길래 브리태니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 걸까요?
진시황과 미란다 커의 공통입맛
홍차나 녹차를 우려낸 물에 프로바이오틱스를 넣어 발효한 천연 음료수 콤부차(Kombucha). 지속 가능성을 생각한 건강한 레시피로 아만다 사이프리드, 미란다 커 등 기라성 같은 셀러브리티가 마시는 핫한 드링크가 되었다지만, 사실 기원전 220년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음료입니다. 진시황도 불로장생을 위해 마셨다는 설이 있죠.
시간이 흐르고 뜬금없이 미국에서 콤부차 붐을 일으킨 장본인 중 한 명은 ‘산도르 카츠(Sandor Katz)’. 스스로 ‘발효 예찬론자’라 지칭하는 그는 간편음식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되도록 느리게, 불 대신 박테리아로 요리하자고 제안합니다. 되도록 모든 요리를요. 일견 기행처럼 보이지만, 그는 아주 오래 전부터 특정 박테리아를 섭취하기 위해 발효 음식을 먹어온 인간에겐 도리어 자연스러운 선택이라 주장하죠.
그가 말하길 오늘날 우리가 약제로 된 유산균을 섭취하듯, 전근대인들도 장내 미생물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프로바이오틱스로 발효한 음식을 먹었다는 겁니다. 집집마다 김치를 담그는 전통이 있는 한국에선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지만, 발효 식품이 익숙하지 않은 당시 미국에선 다소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나아가 산도르는 그의 저서 ‘발효의 기술(The Art of Fermentation)’에서 직접 콤부차 종균을 배양해 음료를 만드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산도르표 레시피에 따르면 먼저 블랙 티나 홍차를 기호에 맞춰 우린 뒤 물을 부어 식힙니다. 다음으로 버섯처럼 생긴 생균제 ‘스코비(symbiotic culture of bacteria and yeast)’를 찻물에 넣어 프로바이오틱스, 즉 설탕을 먹이죠. ‘박테리아와 이스트의 공생 문화’의 준말인 스코비는 발효 공정의 핵심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식초처럼 새큼한 첫맛과 달콤한 끝맛의 유산균 음료가 완성됩니다.
코카콜라 맛있다, 맛있으면 콤부차
히피처럼 자연 속 작은 공동체를 일궈 살아가며 발효 음식으로 AIDS를 다스린 산도르의 아우라와 비거니즘으로 대표되는 식생활의 변혁, 거기에 입맛을 돋우는 음료 자체의 새콤한 매력까지 더해지면서 콤부차는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힙한 음료로 급부상했습니다.
여기에는 탄산음료를 비만과 당뇨병의 원인으로 공식화하는 동시에, 소다에 세금을 도입하면 비만율을 낮출 수 있다는 WHO의 발표도 한몫했죠. 프랑스에서는 2017년부로 설탕이나 가당제를 함유한 탄산음료 무제한 리필이 법적으로 금지되었고, 미국의 필라델피아, 버클리,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가당 음료에 세금을 부과하는 ‘소다세’ 정책을 이행 중입니다. 한국 학교의 자판기, 매점에서도 탄산음료를 찾을 수 없을 뿐만더러, 어린이가 TV를 가장 많이 보는 시간인 오후 5~7시에는 탄산음료 광고 방송을 불허했지요.
이에 펩시는 2016년 2억5000만 달러에 콤부차 회사 ‘케비타(KeVita)’를, 코카콜라는 2018년 ‘오가닉&로트레이딩(Organic&Raw Trading)’을 인수하는 등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해외 시장조사업체인 오르비스리서치는 콤부차 시장 규모가 2023년 약 38억 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측합니다. 집집마다 만들어 먹던 요구르트가 어느덧 엄청난 시장 규모의 식품이 된 것처럼, 콤부차도 메인스트림에 등극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아요.
두유 노 김치, 두유 노 콤부차?
이처럼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지만, 국내에선 다소 낯선 이름의 콤부차. 한국과의 접점은 한국인 의사 ‘곰부’의 이름에서 왔다는 출처 불명의 어원뿐인 듯합니다. 하지만 돈키호테 콤부차를 개발한 푸드마스터그룹의 박형수 대표는 김치부터 매실 원액까지 발효 원리로 음식을 만드는 한국의 식습관에 주목합니다. “비록 전체 파이는 작지만, 각종 발효 음식을 일상적으로 접하고 식품 효능에도 관심 많은 국내 시장이 언젠가 반응할 거란 믿음이 있었어요."
과거 서울우유에서 요구르트와 커피, 주스 등 다양한 제품을 기획하며 한국인의 음료 입맛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된 박형수 대표는 콤부차의 발효취가 제품 개발의 가장 높은 허들이었다고 말합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선 이 냄새를 잡기 위해 인위적으로 미각을 살짝 마비시키는 탄산과 약간의 알코올을 넣는다고 하죠. 하지만 박 대표는 무탄산, 무알콜이라는 정공법을 택합니다.
맛을 잡는 데 1년이 걸렸어요.
결국엔 순수한 맛을 내려고 국산 벌꿀까지 9~10% 넣게 됐죠.
하지만 그에게 떨어진 더 어려운 과제는 대량생산 과정에서 유실될 수 있는 풍부한 유산균 수를 지키는 것. 콤부차만의 건강함을 보존하기 위해 박형수 대표는 발효를 위한 프리바이오틱스로 설탕 대신 과일을 넣습니다. 스코비에 과일 퓨레를 부으면 발효만 7~9일 걸리는 대장정이 시작되죠.
그다음 단계는 더 많은 분께 선보이기 위한 살균. 박 대표는 8~90도의 군불로 진득하게 달이는 한약의 제조 과정에서 힌트를 얻습니다. 135도에 달하는 고열로 순간적으로 살균하는 기존의 방식 대신, 우유 같은 신선 식품에 쓰이는 ‘파스퇴르 공법’을 채택한 것이죠. “온도는 낮게, 시간은 길게 둬서 좋은 균도 다같이 죽지 않게끔 했어요.”
그럼에도 혹시 몰라 살균 처리 후 유산균 200억 마리를 추가로 투여한다는 박형수 대표. “제가 17년 전에 암 투병을 해서 그런지, 원가가 좀 높아져도 좋은 걸 만들고 싶어요." 거기에 식이섬유와 영국산 비타민 C, 항산화제도 넣다 보니 약인지 음료인지 모르겠다며 웃습니다.
오늘의 아이코닉 드링크
몸에 좋은 박테리아로 발효한, 보약처럼 든든한 동시에 탄산음료보다 맛있는, 수천 년 된 레시피로 젠지 세대와 할리우드 셀러브리티를 매혹한… 콤부차 앞에 붙는 일견 생소한 여러 표현만 봐선 여전히 어떤 맛인지 감이 안 잡히시죠?
조만간 모두가 손에 들고 다닐 아이코닉 드링크 콤부차. 그 독특한 산미의 세계를 이왕이면 박형수 대표의 진심이 담긴 돈키호테로 조금 일찍 경험해보세요. 누가 알겠어요? 콤부차 영상 하나로 틱톡을 재패한 브리태니만큼 다채로운 표정으로 일약 SNS 스타에 등극할지도 모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