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인가

중용은 가운데가 아니라 '맥락'이다

by 끄덕이다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들으면 곧 실천해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부모 형제가 있는데 어찌 듣는 대로 바로 행하겠는가?"

염유가 같은 질문을 하자 공자가 말했다. "들으면 곧 행해야 한다."

공서화가 물었다. "왜 자로와 염유의 같은 질문에 다른 대답을 하십니까?"

공자가 말했다. "염유는 소극적이라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한 것이고, 자로는 지나치게 적극적이어서 물러서도록 한 것이다." - 『다산의 마지막 질문』 중



학창 시절, 나는 자유롭고 수평적인 문화만이 조직의 '유일한 정답'이라 믿었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기업인 구글이나, 회사명처럼 컨텐츠 업계에선 꿈의 기업이라고 불렸던 드림웍스처럼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고, 필요하면 언제든 직급을 내려놓고 자유로이 토론하는 사내 문화를 보며, 당시에 나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실질만을 추구하는 이런 문화야말로 혁신을 창조하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실제 인턴 생활을 했던 B와 C사 역시 그런 자유분방함이 미덕인 곳이었다.


하지만 정식으로 입사한 A사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곳은 보수적이었고, 위계질서가 명확했으며, 의사결정 과정은 군대처럼 질서 정연했다. B와 C에서 환영받던 톡톡 튀는 의견이나 자유로운 태도는 A사에서 '가벼움'이나 '무질서'로 치부되었다. 회사생활 초반에는 그 숨 막히는 공기에 압도되어 적응하기 다소 힘들었다. 동기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요즘 시대에 이런 고인물 조직이 살아남을 수 있냐"며 강한 어조로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험이 쌓이고, 실무의 깊이를 알게 되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A사에는 A사만의 방식이 필요하구나.' 곳은 작은 실수 하나가 막대한 금전적 손실이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현장이었다. 그래서 여기서 필요한 것은 자유로운 상상력이 아니라, 기계처럼 정확한 보고와 일사불란한 실행력이었다. 내가 '구닥다리'라고 비난했던 군대식 문화는, 사실 이 조직이 리스크를 관리하고 생존하기 위해 찾아낸 최적의 '해답'이었던 것이다.


자유롭다고 무조건 선(善)이 아니고, 보수적이라고 반드시 악(惡)이 아니었다. '좋은 문화'란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목적과 업의 본질에 부합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공자의 일화가 주는 메시지도 다르지 않다. 도를 추구한다는 목표는 같지만, 그 사람이 처한 위치와 기질, 성장 단계에 따라 필요한 조언은 정반대가 될 수 있다. 자로에게는 '브레이크'가, 염유에게는 '엑셀레이터'가 필요했듯 말이다. 이렇듯 비슷한 상황이라도 그 사람의 기질과 처한 상황에 따라 문제에 대한 풀이 과정이 달라진다. 공자는 이미 수천 년 전에 '맥락'의 중요성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용(中庸)의 참뜻도 여기에 있다. 중용은 기계적으로 정가운데를 택하는 것이 아니다. 시중(時中). 즉 때와 상황에 딱 들어맞는 균형점을 찾아내는 치열한 과정이다. 그래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말이 단순한 줏대 없는 변명과 핑계가 아닌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나도 변하고, 내가 발 딛고 있는 환경도 달라진다. 과거의 정답이 오늘은 오답이 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섭리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관통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여기서 조금 더 생각해본다.


"모두에게 통하는 정답은 없지만, 각자에게 맞는 해답은 있다. 그리고 반드시 피해야 할 오답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직면해있는 수많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무수히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 허나 우리가 공자나 정약용 같은 성인들처럼 매 순간 명쾌한 해답을 찾아내기는 지극히 어렵다. 그리고 그렇게 치열하게 노력하다보면 종종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깜빡 잊곤 한다. 바로 해답을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치명적인 오답을 피해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해답에만 몰두하다보면 시야가 좁아져 정작 피해야 할 중요한 사건들을 놓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오답을 피할 수 있을까?


그 오답을 피하는 힘은 특별한 것에서 오는 게 아니다. 다만 시각을 유연하게 가지면 되는 것이다. 조각난 사실 하나에 매달려 성급히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천천히 조망하고 맥락을 읽어낼 줄 아는 능력. 때로는 나무만 보다가 숲을 보아야하고, 숲을 관망하다가도 특이한 나무를 관찰하는 여유와 유연함, 집중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이란 단편적인 진실의 조각을 쥐고 흔드는 것이 아니라, 그 조각들을 이어 하나의 온전한 그림을 그려내는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