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규칙, 다른 서울 #16_ 활동가 이슬
'활동가'가 뭐 하는 사람들이지?
2014년도에 '늘장'이라는 곳에서 활동하면서 활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했어요. 경의선 숲길 아시죠? 그 숲길이 생기는 과정에서 숲길 공간 일부를 “사회적 경제를 위해 써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게 '늘장'이거든요. 길 한 편에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를 들여놓고, 사회적경제 단체들이 모여 365일 장터를 열었죠. 저는 공간 매니저로 행사나 플리마켓 같은 것들을 주관했고요.
지금은 서대문구에서 '청년 커뮤니티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사소할 수 있지만, 막상 실행하기엔 어려울 수 있는 동네 모임이나 청년들의 프로젝트 같은 것들을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지원해주는 사업이에요. 그래서 이름도 '사소한 프로젝트'
'돈'은 안되지만, '좋은 일'하는 사람들?
'돈 될 것 같은 사업'은 아니라고 느끼셨다면 솔직히 맞아요. 사실 '활동'영역, 그러니까 활동가들이 하는 일이란 대부분 그런 식이죠.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한다거나, 청년들을 위한 지원 사업이거나. 사회를 위한 일들이지만 막상 그 자체로 마땅한 수익구조를 가지진 못하잖아요.
제가 지금 다니는 회사만 봐도, 관에서 주는 위탁이 없으면 당장 돈을 벌 수가 없죠. 그러다 보니 회사 직원들의 (경제적 측면의) 노동 조건도 불안한 게 사실이고요. 노동 형태도 계약직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업을 진행하면서 자기 월급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일까요. 이쪽 영역에 별 관심이 없으신 분들은, 아예 이런 불안정성을 저희의 정체성으로 보기도 해요. 뭐랄까, 그냥 '좋은 일 하는 사람들' 정도라고 할까요? 직장이 없거나, 있어도 불안정하지만, 봉사활동처럼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 그래서 명절 때 집에 가면 “너 언제 취직하느냐”고 질타를 받기도 하죠. 전 이미 일을 하는 건데!
지속가능한 활동을 할 순 없을까?
이런 시선도 시선이지만, 사실 활동가들의 노동불안정성은 활동가들 본인에게 가장 큰 고민일 수밖에 없어요. 활동가 친구들끼리 모이면 다들 활동에 대한 보장이나, 노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죠.
같은 시기에 활동을 시작한 활동가 동기들과 여전히 친하게 지내고 있거든요. 떨어져 나간 사람들도 많지만, 여전히 여기저기서 활동을 이어나가는 사람들도 많죠. 누구는 종로구 사회적경제센터에서 누구는 지역기반 문화단체에서. 그런데 만나보면, 다들 고민이 많더라고요.
사실 활동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청년이 자신의 노후를 걱정하잖아요. 나는 이러이러하게 살고 싶은데 그게 힘들 것 같다거나, 아니면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지만, 노후가 걱정된다거나. 저희도 똑같은 차원에서 불안을 느끼고 있는 거죠.
저는 그런 불안감을 덜어내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속가능한 활동, 활동가들의 노후와 노동복지를 고민하는 모임을 만들고 있죠. 지금은 주변 활동가 친구들을 모으는 것부터 하고 있어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조직화'가 선행되어야 이 문제의식을 구체화하고 해결까지 고민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앞으로의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해 필요한 정책적인 부분까지 고민해 나가려고요.
이러한 모임이 주변 활동가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저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활동가 영역에 오래도록 남아있고 싶거든요. 가능한 한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은데, 내 친구들이 내 주변 동료들이 하나둘 지쳐서 떨어져 나간다면? 저는 혼자 남게 되는 거잖아요. 혼자 남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이 모임을 시작했죠.
“그런데, 왜 그렇게 살아?”라고 물어보신다면!
불안하다면서 왜 그렇게까지 활동가를 하려고 하냐고 물어보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음 일단은 “좋으니까”라고 대답해야겠네요. 사실 저희 집안이 워낙 사회활동에 관심이 많은 집안이거든요. 아버지도 사회운동을 하시고, 어머니도 선생님인데 전교조 활동을 하셨어요. 저도 사회학과를 나와서 그런 쪽에 관심이 굉장히 많았죠. 그러다 친구의 소개로 활동가를 시작했는데, 하는 일도 조직 분위기도 저와 너무 잘 맞는 거예요.
노동조합이라던지 다른 직장도 몇 번 구해봤는데 일의 성격이나 조직 분위기가 안 맞는 경우 계속해서 다니긴 힘들더라고요. 일반 기업은 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여성의 경우 사내문화에 따라 부당한 일을 겪는 경우도 많잖아요. 입사하자마자 “사무실에 꽃이 들어놨네~” 하는 농담을 들어보니, 내가 일할 수 있고 일하고 싶은 곳에서 있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죠.
활동,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필요한 일
또 누군가는 '이런 일'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도 있어요. 가령 저는 지금 지역 청년 커뮤니티에 관한 일을 하고 있잖아요. 이런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개인적으로 비혼을 결심하면서였어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커뮤니티가 있잖아요. 혼자서는 너무 힘든 부분을 채워주는 일종의 공동체 문화죠.
그래지자면 비혼을 결심한 사람들은? 각자 투쟁하며 살기에 너무 힘들다는 건 똑같은데 마땅한 대안 커뮤니티는 없는 상황이에요. 이런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게 '활동'인 거죠. 이 사회가 아직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다양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활동가로서 살고 있지만, 노후가 불안한' 이들을 위한 활동도 마찬가지죠.
기획·편집_청년자치정부준비단
인터뷰·글_한예섭
사진_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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