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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업계에 '성평등'이 필요한 이유

새로운 규칙, 다른 서울 #17_테크페미 옥지혜

'IT 업계'라고 하면 이미지가 좀 긍정적인 편이죠? 보통 테크업계를 보고 수평적인 분위기라느니, 개방적인 마인드라느니, 이런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사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에요. 소위 '조직생활이 빡세다'고 하는 몇몇 업계들에 비해선 훨씬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업계가 IT/테크업계니까요.  


그러나 이 업계에도 불평들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사실 기본적으로 불평등한 구조가 존재하는 사회인만큼, 어떤 업계든 간에 “여기엔 불평등이 없다”고 말하는 건 불가능하겠죠.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요. 그중에서도 '성차별'은 대표적인 불평등 요소에요.  


테크페미, IT업계에서 페미니즘을 말하다  


저희는 그래서 모였어요. 디자이너, 개발자, 기획자, 마케터 등 직무와 상관없이 성차별적인 이슈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IT 업계 내의 페미니스트 모임을 만들었죠. 테크 업계의 페미니스트들이니까. 그래서 이름도 '테크페미'. 


처음엔 일상에서 쌓인 감정들을 공유하는 일종의 속풀이 수다 모임이었어요. 말했듯 우리 업계에도 성차별적인 일은 일어나는데 혼자서는 그걸 풀어내기가 어렵잖아요. 주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부터, 얼핏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는 일에도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작용하는 경우는 많거든요.  


가령 이직 처를 구할 때만 생각해봐도요. “ㅇㅇ회사는 여자가 다니기 좋다”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죠? '여자가 다니기 좋다'는 말이 대부분은 그냥 근무 강도가 낮다는 뜻인데, 이렇게 편견이 반영된 조언으로는 진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어요. 여자라고 직장을 선택할 때의 기준이 근무 강도 하나일 리는 없잖아요. 얼핏 사소해 보이지만, 이미 뿌리 깊게 자리한 편견이 잘못된 결과는 만드는 사례죠. 별다른 악의가 없어도 말이에요.  



평등과 안전을 즐길 권리  


간략하게, 평등과 안전이라는 키워드로 저희 활동을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구나 평등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가 있잖아요. 그런데 성차별은 여성이 그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만들죠. 성폭력, 따돌림, 편견 따위가 만연한다면 어떻게 안전하고 평등한 삶을 살 수 있겠어요.  


2018년 게임 업계에선 페미니스트 여성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불링(가상공간을 뜻하는 사이버( cyber )와 집단 따돌림을 뜻하는 불링( bullying )에서 생겨난 신조어로 사이버상에서 특정인을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이 일어났어요. 개인이 페미니즘 이슈에 관심을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사이버 테러는 물론 실질적인 고용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죠. 개인의 안전한 삶이 위협당한 거예요.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테크페미 단체 차원에서 공동성명을 발의했죠.  


테크페미의 일부 구성원이 모여서 오프라인 행사 티켓을 결제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 '밋고'를 만들었어요. 이왕 만드는 김에 '더 안전한 행사, 더 평등한 행사'라는 방향성도 부여했죠. 성별이나 성적지향, 기타 등등 개인의 정체성으로 인해서 불편할 일이 없는,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행사들을 찾고 결제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너무 유별난 거 아니야? 그런 쪽으로 수요가 생길까?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밋고'는 런칭 3개월 만에 회원 수는 2500명, 개최 이벤트는 60개 이상을 기록했어요. 이 정도면 꽤 성공적이죠?  



성평등에 대한 '수요'가 있다 

보통 어떤 행사, 혹은 환경 자체가 '남성중심적'이라는 지적엔 “어쩔 수 없다”라는 답이 많이 나와요.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장의 모습이라는 거죠. 가령 컨퍼런스 행사의 연사 성비만 봐도요. 남성 연사로 가득한 행사는 많지만 반대의 경우는 없잖아요. 여성 연사가 부족한 현상에 대해 지적하면, 결국 수요에 따른 결과이니 문제 될 건 없다는 식이고요.   


그러나 테크페미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건, 우리 사회엔 이미 성평등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점이에요. 2017년에 저희가 처음 기획했던 프로젝트가 모든 연사를 여성으로 구성한 '여성 기획자 컨퍼런스'였죠. 2018년 2회차까지 각 행사마다 200명 이상이 모였어요. 업계 내의 성평등 문화, 여성 경력자가 말하는 커리어패스 같은 '성평등 콘텐츠'가 먹혀든 거예요.  


사실, IT 업계 자체가 여성의 수요를 문제 삼는 판이기도 해요. 이공계열, 기술, 개발직 같은 키워드들은 모두 대표적인 남초 성향 환경이라고 평가받잖아요. 거기에 “여자들이 과학, 수학을 못 해서” 혹은 “여자들이 이런 환경을 꺼려서” 등등의 이유가 붙고요.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애초에 오랜 역사 동안 “여성은 이쪽 업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교육해온 건 이 사회니까요. 태어날 때부터 수학을 못하고, 과학을 꺼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여자가 안 와서'라고 변명하기 전에, 여성이 이 업계를 기꺼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더 큰 차원의 작업이 필요해요. 이 업계에서 뛰고 있는 여성의 경험을 더 많이 보여주고, 여성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더 많은 네트워크를 마련해야죠. 그리고 저희 테크페미가 하고 있는 일도 같은 맥락에 있어요. 한 마디로 줄이면, '성평등' 말이에요.


* 테크페미 이메일 : techfemi.kr@gmail.com



기획·편집_청년자치정부준비단

인터뷰·글_한예섭

사진_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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