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규칙, 다른 서울 #21_연구활동가 정보영
바트! 대학원생 놀리지 말거라, 그냥 잘못된 선택을 한 것 뿐이야.
'대학원생 개그' 많이 들어보셨죠? 최근 몇 년 동안 대학원의 현실의 풍자한 각종 '밈'(인터넷상에 재미난 말을 적어 넣어서 다시 포스팅한 그림이나 사진을 밈(meme)이라고 함)들이 유행했잖아요. 실제로 현실을 잘 반영한 것들이 많더라고요. 대학원은 돈도 잘 안 되고, 연구 활동은 힘들고, 그래서 결국 연구 활동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죠. 대학원을 나온 연구자로서 저도 각종 밈들에 공감될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좀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요. 대학원 밖에서도 '대학원생 개그'가 유행할 정도인데, 애초에 대학원생들은 왜 대학원에 들어간 걸까요? 보통 “교수 되려고 (대학원) 들어갔다”는 말이 많지만, 대학원 내에서도 교수가 되겠다는 '꿈'은 비현실적인 일로 치부되거든요. 오히려 대학원생이 교수가 되고 싶다 하면 너무 이상적이구나, 현실을 잘 모르는구나 놀리는 편이죠. 안타깝지만 그런 건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실제로 많으니까요.
그들은 알면서도 왜 '잘못된 선택'을 했을까?
대표적인 오해들이 또 있어요. 대학원 사람들은 빵빵한 집안에서 온 가족의 지원을 받고 있다거나, 어차피 취업이 안 되니 도피성으로 대학원에 왔다거나. 물론 그런 대학원생이 없지는 않겠죠. 하지만 대학원 안에도 굉장히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있어요. 생활이 넉넉지 않아도, 취업을 할 수 있어도 대학원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죠.
그리고 이 다양한 유형의 대학원생들에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이 하는 '연구'에 열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연구를 계속 하고 싶다는 마음, 내가 하는 이 연구를 통해서 사회를 좀 더 나아지게 하고 싶다는 마음 말이에요. 저는 여기에 굉장히 공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의 이야기로 예를 들어보자면, 저는 대학원에서 사회운동을 연구했어요. 그 중에서도 청년 운동을 주제로 지금도 연구를 지속하고 있죠. 기성의 운동과는 다른 방식으로 펼쳐지는 청년운동의 주장에 공감했거든요. 기존사회에서 통용되던 가치관과 다른 것을 얘기하는 운동, 반권위적인 방향성, 사소한 대화에서의 노력에서부터 사회적 소수자를 포용하려는 노력까지.
청년운동 안의 여러 논의들이 결국 미래 사회를 디자인하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이 운동과 활동들을 기록하고, 분석하고, 적당한 위치에 위치시키는 일이 또한 필요하다고 느꼈죠. 그게 제 연구 활동의 이유에요. 청년 활동가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게 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리는 것. 결과적으론 더 나은 미래사회로 나아가자는 거죠.
의미 있는 연구가 계속되기 위해선
다른 분야의 다른 연구자들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분야의 연구자든,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죠.
그런데 지금 사회에선, 연구 활동에 담긴 이런 '공적인 가치'가 잘 인정받지 못해요. 그래서 문제가 생기죠. 사회가 연구의 공적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이 계속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의미 있는 연구가 나올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니 소위 '돈이 되는',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를 제외하곤 사장되어 가는 상황이죠. 대학원생의 삶도 그만큼 피폐해지기 마련이고요.
저만해도 최근 활발하게 이야기되는 영역의 연구를 하고 있잖아요. 그렇지만 주위 동료들을 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아요. 그러면 연구자들 스스로 생각하게 되는 거죠. “아, 나는 돈 안 되는 연구만 하는 것 같아.” “내가 연구를 끝내고 (대학원을 나가면) 뭘 할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연구는 위축돼요. 개중에 어떤 이들은 자신이 진짜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분야를 포기하고 돈이 되는 분야로 가죠. 또 어떤 이들은 생업을 위해 연구를 포기하기도 하고요.
우리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최근엔 “우리 계속 연구할 수 있을까?” 라는 주제를 가지고 모임을 열었어요. 연구자들을 모아 대학원생들이 과연 뭐가 힘든지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도 고민해 봤죠.
금전적인 문제, 심리적인 문제, 신체적인 문제, 노동의 문제 등 문제가 많은 만큼 필요한 것도 많았어요. 지원도 필요할 것이고, 여러 지원정책의 홍보도 필요할 것이고, 좀 더 소소하게는 연구자들의 신체 건강을 위한 장비들도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할 상담센터로 필요하겠죠. 그런데 이야기를 모으다보니 결론은 비슷하더라고요. 그 모든 것이 가능해지려면 결국 연구활동에 대한 인식과 담론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된다는 이야기였죠.
개개인의 고충을 폭로하는 '대학원 개그'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일 거예요. 그렇지만 거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대학원이 '당연히 안 좋은 곳'으로 인식되고, 대학원생들의 선택은 단순히 '잘못된 선택'이 된다면 결국 바뀌는 건 하나도 없을 테니까. 정말 이상적인 사회는 '누구나 연구하고 싶으면 연구할 수 있는' 사회, 그래서 더 많은 의미 있는 연구가 현실을 바꿔나가는 사회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이야기 해야죠. 우리의 선택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그리고 당신이 무엇을 연구하고 싶으면, 고민하지 말고 대학원에 와서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그럴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획·편집_청년자치정부준비단
인터뷰·글_한예섭
사진_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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