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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남자라면 교사가 되려 했을까

새로운 규칙, 다른 서울 #01_아웃박스 김수진

세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들로 가득하다. 1980·90년대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준, 과정, 결과들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여기 관성을 넘어 다른 시각으로, 기성세대가 이끄는 룰에서 벗어나 보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나가는 ‘빌더’들이 있다. 우리의 삶과 세상에 크고 작은 균열을 가져올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서핑과 위스키만으론 바뀌지 않는 당신의 삶에, 어딘가 색다른 균열이 생기길 바라며.


최근에 초등학교 고학년 여자아이들을 대상으로 <나의 첫 월경수다>라는 행사를 열었어요. 경기도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거든요. 아이들이 생리를 시작하는데 그걸 너무 부끄러워하거나 무서워하더라고요. 학교에선 생리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요. 끽해야 성교육 시간에 배우는 것이 전부예요. 그러다 보니 외려 생리가 성적인 것, 야한 것으로 치부돼요.


생리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공간이 필요한거죠.


<나의 첫 월경수다>는 방과 후 교과외 수업으로 진행했는데, 총 서른여섯 명의 아이들이 신청했어요. 아이들과 함께 생리에 대해 이것저것 수다도 떨어보고, 대안 생리대도 직접 만들어봤죠. 아이들 반응이요? 완전히, 엄청 좋았죠! 한 아이는 이제 자기도 교실 문 쾅 열고, “생리대 있는 사람!” 하고 당당히 외칠 수 있을 것 같대요. 아직 생리를 시작하지 않은 아이들도 많았는데, 다들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했어요. “아, 이게 누구나 당연히 하는 거였구나” 느꼈다고. 뿌듯했죠.

초등학교야말로 젠더 수업이 필요한 공간


보통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성, 혹은 성별에 대한 편견들, 초등학생 어린이들도 똑같이 가지고 있어요.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를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죠. 우리가 아이들에게 건네는 사소한 말에도 ‘여자다움’ ‘남자다움’ 같은 편견이 뚝뚝 묻어나거든요. “여자애가 글씨를 왜 이렇게 못 써”, “남자애가 울긴 왜 울어”같은. 자녀가 “여자애인데 너무 씩씩해서” 고민, “남자애인데 너무 소심해서 고민”이라는 학부모도 많죠.


아이들에게도 고정관념이 쌓여가는 게 눈에 보여요. 학년이 높아질수록요. 남자는 운동장에 나가서 축구를 해야 하고, 여자는 얌전히 앉아서 그림을 그려야 한다 생각하죠. 또 가족에 대해 물어보면 아빠(남자)는 일하고 엄마(여자)는 집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요. 이런 고정관념이 결국 아이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성역할로 이어지고, 그게 이 사회의 성차별과도 이어지겠죠.


누군가는 ‘성별의 틀을 깨고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줘야 하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교육을 한 적이 없었어요. 생리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으니 결국 아이들이 생리를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게 된 것처럼요. 유튜브에서 접하는 혐오발언들을 남자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것도 비슷한 일이죠. 그게 혐오발언인지도 모르고 사용하다가 중학생쯤 되면 “메갈이다” “워마드다”하며 여자아이들과 싸우는 일이 흔해요.

얘들아, 우먼박스, 맨박스에서 벗어나 나다운 걸 찾자!


독서모임 선생님들끼리 ‘초등젠더교육연구회’를 만들었어요. 이름은 ‘아웃박스’. ‘Outside of the Box’라는 표현에서 가져왔어요. 소위 맨박스, 우먼박스라고들 하잖아요. 아이들이 성별이라는 박스에서 벗어나길 바란다는 의미예요. 아웃박스 활동을 통해 어떻게 하면 수업에 젠더 이슈를 녹여낼 수 있을까 연구하기 시작했죠. ‘가족 내에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따로 있느냐’는 주제를 가지고 그림책을 읽으면서 토의를 한다든가, ‘남자답고 여자다운 것 말고 나다운 것은 무엇일까’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우려하는 시선도 있죠. 윗세대 교사 분들은 이게 왜 필요한 거냐 의문을 가지시기도 하고. 실제로 민원도 들어왔어요. <한겨레>에서 인터뷰를 했더니 학교망신이라고 내리라는 말이 나왔죠. 또 학교에 전화가 와서 이 학교에 ‘젠더’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다고 하던데 위험한 거 아니냐고.


수업을 들은 아이나 학부모들은 굉장히 좋아하시는데, 밖에서 볼 땐 너무 ‘민감한 주제’를 가르친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성교육만 하더라도 그래요. 정말 필요한 교육인데 “아이들한테 이런 얘기를 어떻게 하냐”고. 그나마 있는 성교육 시간을 음주, 흡연하지 말라는 얘기로만 채우기도 하고요.


교사가 먼저 바뀌어야죠. 그래서 아이들 수준에 맞춰 우리가 어떤 교육을 해야 할지 매뉴얼을 만들고 있어요. 앞으로는 성평등 교육에 대한 교사연수도 추진해 보려 해요. 최근에는 책도 냈어요. 올해 저희의 목표였고요, 책 이름은 <예민함을 가르칩니다>예요. 저희가 수업한 내용을 담은 교육 에세이예요.



여자라서 교사를 원했던 것은 아닐까, 아이들은 더 다양한 꿈 꾸길

왜 이렇게까지 힘들여 일을 벌이냐고 물으실 수도 있어요. 글쎄요. 그냥 어느 순간, 제가 교사가 된 것조차 여자다운 삶을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남자였으면 난 교사가 되려 했을까? 라고요. ‘교대가라’ ‘교사해라’ 라는 얘기, 여자들은 많이 듣잖아요. 퇴근도 빨라, 육아휴직도 편해, 여자한테 메리트가 정말 많은 직업이라고요.


그런데 그 메리트, 어쩌면 여자라서 필요한 거잖아요.


아직까진 그런 메리트가 보통의 남자들한텐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결과적으로는 이런 제 개인적인 고민이 교육으로 뻗어나간 거라고도 할 수 있겠죠. 아이들만큼은 이런 틀을 벗어나 다양한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어서. 그래서 계속 하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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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편집_고정은 (청년자치정부준비단 파트너)

인터뷰·글_한예섭

사진_김재기


* 12월 7일 금요일 오후 6시 서울시NPO지원센터 1층에서 <예민함을 가르칩시다 : 지금 당장 필요한 성평등 교육>을 주제로 작은 행사를 마련했습니다. 아웃박스 블로그 또는 이벤트 링크(http://bitly.kr/78gS)에서 신청하시고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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