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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Oct 02. 2022

기억 속의 찬란했던 나, 우리

과거 모습에서 지금의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얼마 전 태풍이 지나간 후 곳곳에서 아픔의 소리가 아우성쳤다. 후유증으로 나라 전체의 분위기는 암울했다. 하지만 일부는 마치 한숨과 대칭을 이루듯 그건 타인의 고통일 뿐이라고 반복적으로 속삭이는 환청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내가 속한 나라 전체를 뒤집고 지나간 무심한 자연을 변호라도 하는 거처럼 바람은 완전히 잦아들었다. 공기는 어느 때보다 상쾌하다. 가을은 의무를 다하고 있다. 가장 가을 다움을 보여준다. 태풍의 후유증으로 힘들어하는 우리를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갑자기 내 삶 속으로 깊이 들어온 가을을 만끽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경멸하는 맘이 생긴다. 결국 타인의 고통이었을까? 그렇다고 모든 일에 대해 지나친 감정이입으로 매 순간을 힘들어할 수는 없다. 자연은 묵묵히 지켜본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연은 크고 작게 경고를 한다.  


도망하듯 자유를 찾아 나섰지만 새로운 프레임에 다시 나를 가둬버렸다. 도망 온 이곳은 꿈꾸고 있었던 자유가 넘쳐나리라 기대했다. 처음 시작에서는 그런 줄만 알았다. 선택한 공간과 시간과 대상까지 그때는 무엇보다 대부분이 빛이 났다. 그것은 이전에 더 찬란한 빛이었는지도 모른다. 더 밝은 빛이었으며 맑은 공기로 의식을 제대로 게 해 주었다. 빛이 안내하는 대로 쫓았다. 시간을 확인하지도 못하고 공간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때만 해도 두 가지는 언제든지 나의 결정에서 움직인다고 믿고 있었다. 대상이 확실하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기억 속의 나의 모습은 누구나 찬란했을까? 기억 속의 삶을 짚어보면 진실이 무엇이고 사실은 어디까지인지. 모든 것이 내가 꿈꾸는 세상의 연장선에 있었는지. 감정적 진실의 기억으로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무모하다고 여길 만큼 강했다. 단단했던 젊음 때문이었을까? 그때도 두려움은 있었다. 항상 용기보다 앞선 두려움은 나를 괴롭혀왔다. 의학적,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몸의 변화에서 젊음을 드러낼 만큼 내 몸이 빛이 난다고 여겨왔다. 제대로 익지 않았고 성숙하지 못했지만 내세우고 싶었던 단단한 내 젊음. 수확했지만 여물지 않아서 우리 가정의 식탁에는 올리지 못했던 그때의 젊음을 기억하고 있다. 그토록 과거가 화려할 수 있었던 까닭은 젊음에서 나오는 무모한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슬러 아아들의 어린 시절과 결혼 전후 부부의 사랑 넘치는 연애사 그리고 청소년기, 아동기, 유년기까지 돌아보니 확실히 무모함과 용기가 뭉쳐있다. 일과 사건이 비례해서 복잡함이 늘어나는 비상구를 함께 정리한다. 가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비상구 주변의 쓰지 않는 물건들이 있다. 혼잡스럽지만 돌아보지 않는다. 과거 삶의 방식이 그랬을까.




주변을 돌아보며 정리해야 하는 것은 환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여전히 복잡한 삶에 얽혀있다. 많이 단순해지고 정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복잡한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결국 과거 젊음에서 무모하지만 도전했던 용기를 배운다. 찬란했던 그때의 나를 떠올려본다. 성숙하지 못한 부분은 비단 감정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토록 찬란했던 건 그 속에 내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성숙한 감정, 삶의 가치에 익어가는 의식 등 다채로워지고 풍요로워진 지금의 내 모습에는 과연 내가 존재할까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정체성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아서일까. 초겨울 말라버린 고목처럼 무력한 삶에 익어가는 나에게는 낯섦도 점점 또렷해진다.




정신없었던 그때, 성숙하지 못한 내면을 돌아보지 못했던 그때, 무모한 용기로 가득 채워진 자신을 찬란했다고 기억하는 건 그 속의 자신의 모습이 가장 나다워서가 아니었을까. 물론 지금의 모습에서도 나다움은 있겠지만. 다듬어지고 혼탁하게 합성이 되어버렸다. 지금의 모습에서는 순물질의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다시 자신을 휘감는다. 누구에게나 다양한 나의 모습이 있다. 도덕적 페르소나도 피해의식 가득한 캐릭터의 나도 자신의 일부이다. 다만 지금은 가장 찬란했던 내가 떠오른다. 그때 호흡했던 공간과 시간까지도. 기억으로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흐른다. 현재가 다시 과거가 되는 그날엔.


행복했던 나의 미소를 잠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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