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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Oct 12. 2022

감사를 외치다

감사함이 뭉쳐 슬픔으로 와닿다




목청껏 외쳐본다. 감사의 마음을.


감사라는 감정은 고맙게 여김, 고마움을 느낌 등으로 감정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움이 묻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감사함에 복받쳐서 때론 눈물이 의식 전체를 덮어버리기도 한다. 갑자기 쓰나미처럼 밀어닥친 감정으로 정리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늘이 드높고 맑아서 감사가 점점 확장되어 버린 걸까? 나약하고 이기심을 기본으로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기에 감정도 쉽게 휘둘린다. 성숙함의 단계에서 멀리 있다면 파장의 폭은 더 넓겠다.




이른 아침 바쁨이 정신을 쉽게 풀어주지 않았던 그때 네이버 알림이 뜬다. 곁눈질로 잠시 확인하니 택배 알림이다. 택배를 시킨 적이 없다는 생각에 잘 못 온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충 확인해 보니 발신인이 J였다. 순간 눈물이 핑 돈다. 다시 볼을 타고 흐른다. 문자를 확인하며 마주친 없이 맑은 가을 하늘 때문이었을까. 무심한 듯 보이지만 그의 깊이를 알고 있기에. 스치고 지나가는 J의 마음이 느껴져서일까. 주변을 성장하게 만드는 넓고 따뜻한 그의 마음이 감사함으로 다시 살아난다.


가끔 사람이 느끼는 여러 감정중 사랑이나 감사함이 넘치면 슬픔으로 마무리된다고 느낀 적이  있다. 지금의 느낌이 감동일까? 따뜻한 마음이 무덤덤하던 의식에 내려앉으니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이 흐른다. 이게 바로 넘쳐나는 감사함일까? 어느 맑은 가을날 J의 따뜻한 마음에서 시작된 사랑이 자연스럽게 감사함을 만들고 그 감정은 최종으로 슬픔으로 치닫는다.


아가페적 사랑이란 건 모성애에만 근거하는 걸까? 아니 모성애에서 시작하는 걸까? J에게서 느끼는 스치듯 지나가는 감사가 어느 날 가을 하늘과 만난 그때, J의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이 같거나 더 큰 마음이라고 느껴졌다. J는 지금까지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의 행동과 실천에는 항상 사랑이 항께 존재해서일까? 그의 사랑을 정의 내려보면 마치 관계에서의 베풂과 수용이 이미 정해진 거처럼 부등식에서의 사랑은 절대적으로 성립한다.


아직은 의무감으로 똘똘 뭉쳐 J의 사랑을 그보다 더 큰 마음으로 돌려주고 싶은 맘이 가득하다. 비록 그와의 이미 정해진 관계에서는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으리라. 그 이상의 사랑을 전하고자 해도 맘을 다 담아내기에는 어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모자라는 어휘를 과하거나 부정적으로 쏟아내기보다는 행하는 실천으로 소리를 내어본다. 감사의 마음이 최절정으로 치닫자 불안해지고 이상을 뚫기 힘든 슬픔이 마음을 다시 움직인다. 아름다운 마음이 극대화된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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