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 한소 Nov 30. 2022

합성수를 소수로 분해한다_소인수 분해

물질이 분자로 이루어지듯 합성수를 소수의 거듭제곱으로 분해하다


12=2²×3, 45=3²×5, 60=2²×3×5

x=a²×b³×c (합성수 x의 소인수: a, b, c)


소수가 합성수를 향하여 소리친다. "너에게 나는 도대체 뭐야!" 소수는 온통 부정적인 감정만으로 묻는다. 밤하늘 유성우처럼 빛나던 소수는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우나  합성수를 이루고 있을 때 더 빛이 난다. 합성수 역시 수 자체가 갖는 고유성이 있으나 소수로 분해되었을 때 가장 명료해진다.




여러 결의 감정과 흩어진 글정돈해서 표현하려고 글을 쓴다. 좋아서 시작한 쓰기를 포기하면 내면이 도망갈까, 살아온 현재의 내 시간이 사라지는 게 두려워 출 수 없었다. 마치 무슨 불문율처럼. 쓰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것만 같았다. 보이지는 않지만 현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이 무작정 공기 중으로 날아가서 퍼진다. 처음의 모습을 찾지 못하고 분해되어 버릴까 봐 두렵다. 그래서 글을 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매일 일상의 시작과 흐름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시간들은 날짜로 순간으로 특별한 기억으로 아름답게 채색된다. 가끔 둔탁한 소리가 분위기로 옮겨져 전체에 색을 입히기도 한다. 정답도 없고 길의 방향을 찾아가는 내비게이션도 없다.


어쩌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가장 정확한 눈을 키우고 있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비교한다. 자신을 괴롭히는 시간들이 잔인함으로 밀려온다. 타인의 글을 읽어내며 자신을 본다. 자신의 글 속으로 들어가서 좀 더 깊은 내면을 훑는다. 초라하다. 긍정적인 면모를 보고 스스로 발전하지 못하며 자신을 괴롭힌다. 주변 화려함 덮여서 흔적조차도 찾을 수 없었던 내 글이 드러난다. 글 조각조각이 물질을 이루는 분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합성수와 소수의 개념을 설명한 어느 날이었다. 뭔가 반짝하며 그 둘의 관계가 명확하게 삶과 연계된다. 소수와 합성수는 전혀 다른 개념이지만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는 없다. 합성수는 소수들의 곱으로 표현된다. 초라하고 빈약하지만 힘 있게 느껴졌던 소수가 중심을 확실하게 잡아주고 자신의 에너지를 뽐낸다. 합성수는 소인수의 조화 이기도 하지만 그것들의 곱으로 만들어진 고유한 수이다.


깨달음 후 감춰둔 자신의 글이 보이기 시작했다. 현상에 존재하고 물질을 이루고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인 분자를 생각하며 수에서의 소수가 보였다. 분자 각각이 사라진다는 건 물질이 존재하지 않음이다. 합성 수란 수 자체가 갖는 의미도 있겠지만 소인수 분해를 하지 않으면 그것이 무엇인지 수의 고유성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우리 삶 속의 비범함은 무수히 많이 반복되는 평범함으로 드러난다. 이미 결정된 되어 있는 자연의 질서에서 보여주듯 수의 세계에서도 맞춘듯한 질서가 드러난다. 삶의 질서에서도 끊임없이 강조한다. 순간, 찰나는 1분 1초 후에는 벌써 지나간 과거이지만 찰나의 순간순간이 모여 지금 이 시간을 만들었다.


소수와 합성수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소수는 약수가 1과 자신으로 약수의 개수가 2개뿐인 수다. 합성수는 약수의 개수가 3개 이상인 수를 말한다. 모든 합성수는 소수들의 곱으로 나타난다. 결국 합성수를 이루는 구성원, 요소는 소수, 소인수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수도 없이 터져 나오는 타자의 글에 감춰진 나의 글은 그저 부끄러울 뿐이었다. 재능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매일 읽고 쓰면 어느 순간 이런 마음이 사라지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읽고 읽어내기를 반복하면 할수록 자신의 글에 실린 생각과 마음은 흔적조차도 찾지 못한다. 점점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기를 한 이후 다시 자신의 글 조각을 찾는다. 떨어져서 저쪽으로 나뒹굴고 있는 글 한 조각을 발견했다. 잠시 위안을 받으려고 멍한 눈으로 조각을 내려다본다. 잠시 존재를 찾아내려고 흐릿한 시야를 다시 더듬는다. 어리석게도 비겁한 고민을 하고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진심으로 다시 다가간다. 그저 채우고 비워 나간다. 그것의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내면의 성장을 위하여, 덜 아파하고 덜 부딪히고 잘 견디려고 읽고 다시 쓴다. 내면의 채움과 비움의 의미를 제대로 보려고 고유한 수 합성수를 소수로 분해한다. 이성적 또는 감성적인 성찰에 의한 인내가 견고해져서 삶 전체로 연결된 직선에서 순간과 찰나를 찾는다. 합성수를 소수로 분해하니 보이듯 타자의 글에서 나의 글을 제대로 찾는다.

작가의 이전글 과정과 결과를 동시에 말하는 '합격'이라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