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레너 2_그리다(그림_by 정 규림)
일상의(방정식=> 등식) 기록_풀다
# 11일 차, 시선 #
듣는 것이 자연스러운 온라인 수업 후 직접 대면하는 오프라인 수업을 통해 제대로 전달받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관계를 볼 수 있었다. 지금의 자신을 냉정한 시선으로 다시 또렷하게 본다. 정도를 넘어선 피곤함을 애써 외면해 보지만 언제나 몸이 먼저 반응한다. 비몽사몽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현실과 꿈을 오간다. 다시 한번 생각을 잡고 천칭을 정리하고자 눈을 부릅뜬다.
프리라이팅 '1인 출판으로 작가 되기' 강연을 무작정 신청했고 그게 과연 나에게 지금 꼭 필요할까 라는 의문이 생겼지만 그 여부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최근, 감정의 골의 깊이를 느끼며 깨어나고 딛고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신청했고 자리가 없는 상태여서 겨우 가능해진 내 한자리~~~~ 소중한 한 자리였다. 아이러니한 건 강연에 도착하기도 전에 내면의 치료는 시작되었다는 거다. 오늘 강의를 생각하면 움직이는 생각의 여정과 대중교통을 이용한 과정에서 비워내기가 가능했고 벌써 치유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미 그 속에서 힘들었던 다시 한 발을 내딛고 있었는지도. 이후 강연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두 발 세 발 네 발을 딛고 있었다.
# 12일 차, 꿈의 밸런스 #
어제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천칭 인증을 겨우 마무리했다. 무의식의 세상에서 졸음이라는 난관에 부딪혔다. 하지만, 마무리를 잘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시작은 했고 벌써 12일 차 진행 중인데 천칭이 부담이나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관된 태도로 삶을 돌아보며 의미를 찾아 스스로 채찍질한다는 것에 발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천칭을 쓰는 시간을 즐기는 나는 그 시간을 이용해 계획과 반성을 한다. 물론 그 시간을 자신만을 위한 시간으로 따로 빼 둔다. 지금처럼 천천히 묵묵히 걸어 나가리라.
# 13일 차, 행복 #
헤르만 헤세의 시 [행복해진다는 것]의 부분 발췌입니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서 왔지.
그런데도
그 온갖 도덕
온갖 계명을 갖고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
인간은 선을 행하는 한 누구나 행복에 이르지.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속에서 조화를 찾는 한.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한....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여러분은 행복한가요? 늦은 시간 일이 끝난 오늘 같은 날은, 내 삶의 목표와 행복을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 그래도 이 시간 천칭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함께 함'과 '소중함'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다. 그저 그것에 감사할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삶이 우리에게 답을 주리라. 오늘도 '함께 함'의 힘으로 마무리를 해 본다.
# 14일 차, 루틴 #
오늘도 늦어 버렸다. 여전히 비몽사몽이다.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나의 자아가 사이와 사이를 그리고 순간과 순간을 움직인다. 오감도 함께 움직인다.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오니 착각을 한다. 무언가를 긴 시간 일관되게 지킬 수 있음은 성실함이고 성실함은 그의 성품과도 같이 자리 잡는다. 각자의 루틴으로.
# 15일 차, 고민 #
[꿈 백화점]에서는 영감에 대해 고민의 시간이 차이를 만들어 내는 거라 말한다. 답이 나올 때까지 고민하는지 고민하지 않는지 결국 그 차이이다. 나 역시 오늘 그 고민을 얼마만큼 했는지 떠올려 본다. 고민을 피해 가려고만 했던 건 아닌지 반성해 본다. 꿈을 꾸면 꿈속에서 만큼은 극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우린 모두가 범위가 있는 공간에서 제한된 자유를 누린다. 천칭은 적당히 나의 뒤를 든든히 지키고 있지만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한다. 또한 그 순간 극한의 자유를 누린다. 든든히 지켜줌이 바로 천칭의 역할이다. 천천히 묵묵히 따라 걷는다.
# 16일 차, 꿈 #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거꾸로 생각하면 온 힘을 다해 어려움을 헤쳐 나가던 때 일지도 모르죠. 이미 지나온 이상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랍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 이렇게 건재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손님께서 강하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 달러구트의 말이다. 곱씹고 곱씹어 본다.
나에게도 힘든 시간이 있었고 여러분도 극복하기 힘든 트라우마가 있을 것이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그 시간, 순간에 다시 자신을 있게 하고 그 경험 속으로 스스로 닿게 하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꿈'이 실제 존재한다면 여러분은 그 꿈을 사고 꿈 값을 지불하려는가? 나? 나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꿈을 사려고 할 것이다. 직면한 순간에 꿈 값을 감당하느라 고통스러워할지라도.
조금 늦게 쫓아간다. 하지만 노력하고 있는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느린 걸음이지만 천천히 걷고 있는 자신을 이젠 인정해 주려고 한다.
# 17일 차, 꿈 값 #
변화가 없는 곳에서도 시간은 흐른다. 매 순간 똑같은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매 순간이 똑같은 모습인 곳에서 우리는 시간이라는 독립된 존재를 느낄 수 있을까. 과연 그것을 느낄 필요가 있을까. 밸런스에 대해... 몸, 그리고 사유, 감각등 여러 부분에서 밸런스를 자신이 중심이 되어 들여다보며 다시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하루의 시작을 5시에 하며 계획을 확인하고 다른 날 보다 조금 이른 마무리를 하며 오늘도 쫓기지 않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시간도 맘도 하루를 열심히 누리고 사랑하며 사용하고 나눴다. 감히 변화라는 단어로 처음을 시작해 보았다. 근시안적 변화가 아닌 거시적 변화의 내가 속한 주변을 보려고 한다.
흐뭇함으로 '벅차오르는 만족감'의 감정을 꿈 값으로 지불하고 싶다.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이 곁에 존재한다면.
모두 자신을 사랑하는 감정으로 하루를 마무리해 보길 권한다.
# 18일 차, 인간의 본질 #
인간의 본질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인간에게는 변치 않는 본성이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다수의 가변적 요인들도 있다. 가변적 요인은 창의성, 생산성, 성과나 업적.... 인간은 자연에 속해 있지만 동시에 자연을 초월한다. 그래서 인간을 '자연의 변덕'이라고 에리히 프롬은 말했다. 이것은 인류가 모순임을 말하고 있다. 갈등과 두려움이 인류와 함께 하고 더 나은 균형을 위해서 넘어야 할 또 다른 불균형을 불러온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것이 반복되는 삶을 살아간다.
내가 무기력한 이유, 당신이 무기력한 이유는 '남이 바라는 나'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내가 바라는 나'로 잘 살았는가.
스스로 아침 햇살을 마중하며 먼저 미소로 회답하고 아침 공기를 맘껏 들이마시며 먼저 "하~~~~~좋아, 상쾌해!" 하고 아침을 귀히 맞아 주었나?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이고 정성스럽게 준비한 아침 식사를 사랑스러운 눈길을 주고받으며 가족들과 그 시간에 충분히 나눔을 했을까.
'내가 바라는 나' '남이 바라는 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 시선을 옮긴다. 하루를 마무리함에 있어 사유의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영화 이야기가 연계된다. 삶의 주체는 자신이다. 그러나 우리는 누군가가 대신 살아줄 거처럼 타자의 시선으로 타자가 바라는 나로 살고 있다. 자신에게 맞는 속도와 움직임으로 순간을 바라보고 충분히 느끼고 온전히 누리길.
내일도 차분히 걸어가리라.
# 19일 차, 소수 19 #
19일 차다. 적고 보니 내 시선을 끄는 19가 존재한다. 천칭 안의 여러 수들 중에 오늘 또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19에 대해 생각해 본다. 19는 소수이다. 소수는 약수의 개수가 2개인 수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약수가 1과 자신뿐인 수를 소수라고 한다. 소수 세계의 본성은 전반적인 혼돈을 배경으로 눈에 보이는 규칙들이 드러나지 않고 패턴의 해명이 필요할 만큼 끈질기게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규칙을 이용해 소수를 찾기는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임의의 시작점에서 다음 소수를 찾기는 기본적으로 예측하기가 힘들다. 수가 커지면 커질수록 소수는 헤아리기 어려워진다 우리의 삶처럼 소수는 다른 수들을 분석할 때 반드시 필요하다. 임의의 합성수들을 볼 때 넋 놓고 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일단, 수를 분해한다. 그렇게 분해한 수를 소수의 곱으로 나타내어 본다. 소인수 분해가 끝난 수는 그다음의 방향이 정해진다. 그렇게 합성수들을 소수의 곱으로 나타내어 가지고 있는 소인수로 분류한다.
우리의 삶에서도 여러 가지 일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소수와 같은 것이 삶에서 열쇠로 어떤 상황의 순간 존재할 것이라 본다. 삶의 자물쇠를 풀어 가는 열쇠는 내가 찾아야 하며 찾은 뒤 열쇠가 그 자물쇠에 맞는지 돌려보는 것 또한 나의 몫인 것이다.
19는 내 삶의 작은 열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러 합성수들을 분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수 세계의 본성처럼. 기록에서의 19는 내 삶, 생활을 풀어 주는 중요한 열쇠인 것이다.
# 20일 차, 경험 #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아무리 작은 생각이라도 생각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 나름의 속성이 있다. 어떤 일은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순간의 모든 행위와 생각들은 경험이 된다. 경험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것이다. 어떤 경험은 거대한 바람처럼 움직였다가 큰 소리를 내며 여기저기서 번쩍인다. 이후 잠잠해지지만 우리는 다시 격렬하고 빠르게 또는 아주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걸어간다.
천칭에서 돌아본 삶뿐만 아니라 모두의 실 생활과 사유의 세계에서도 일상을 겪어나가는 과정이다. 삶인 것이다. 천칭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밸런스에 대하여 사유하는 많은 시간을 가져 보았다. 정리하고 반성의 과정을 겪고 마음을 다시 잡고 내일을 굳게 다짐했다. 많은 경우의 수를 안겨준 천칭에서의 시간이 감사할 뿐이다.
# 21일 차, 루틴 #
앞으로 나의 천칭은 계속되겠지만 우리의 '함께 함'의 시간은 지금을 마지막으로 멈출 것이다. 이번 경험으로 '함께 함'의 힘과 기운이 얼마나 크고 강력한 것인지 확실해졌다. 혼자였다면 곳곳의 난관이 있을 때마다 잠시 쉬어가기를 했을 거다.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할 수 있었던 힘은 '함께 함'에서 나오는 위대함이라는 확신이 든다.
'함께 함'으로 이젠 어느 정도는 흔들림의 혼란의 플랜에서 강력한 습관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오늘 체험이 미지막이지만 각자 자신의 루틴을 잘 지켜나가길 응원한다.
잠시 쉬어가기도 삶의 여러 모습 중 하나이고 에너지를 살펴보고 긴 쉼을 갖는 것도 또 다른 모습이다. 정답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길이다. 허덕이며 뛰어가고 조급해하지 않기를... 타자의 시선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