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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Mar 27. 2023

중심으로부터 일정한 거리의 원의 사랑 2

그저 다양한 표현과 방식의 사랑일 뿐

         

원에 대한 나의 사랑은 무한에 가깝다. 가끔 누군가의 이미지에서 원을 발견하거나 느껴지면 조건 없는 사랑으로 마음이 적극적으로 변하고 행동은 그것보다 앞서 표출다.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은 돌발적인 내면의 모습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만큼 원을 사랑했었다. 지금도 여전히 아련한 사랑으로 남아 있는 원. 원이 어느 날 내 가슴 깊숙이 다른 장기를 헤집고 파고 들어온 건 그날부터였다.


 x²+y²=r²

(x-a) ²+(y-b) ²=r²

    

어느 날 좌표평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원과 원의 방정식을 풀어나가고 있을 때, 대수롭지 않았던 원이 유성과 같은 빛을 내며 반짝거렸다.


반지름의 길이가 제각각 다른 원들이 하나씩 다른 빛을 내며 반짝이는 게 아닌가? 반지름의 길이가 다른 원들은 각각 원이 주는 완벽한 균형과 곡선의 아름다움으로 빛이 났다. 그 모습에서 사랑이 강렬하게 떠올랐다. 그때의 사랑은 심장의 모습을 지닌 하트가 아니라 온전한 곡면의 모습인 원으로 다가왔다. 균형 잡힌, 꾸며내지 않은 절제된 사랑으로 일정한 간격을 잘 유지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그대로 원의 자리에 들어가 있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 수학 교육과정을 돌아보면 대수와 기하 편을 통틀어서 함수와 원을 떼어 놓고 말하기는 어려울 거 같다. 다행히도 나는 함수와 원을 학습함에 있어서 크게 거부가 없었다. 어쩌면 곡선, 곡면 그것 중에서도 원에 대해서 유독 애착이 많았다.


잠시 원의 정의를 살펴본다. 중심으로부터 일정한 거리에 있는 점들의 자취, 흔적을 원이라 한다. 정의보다는 훨씬 아름다운 외형의 원을 생각하면 우리 삶에 묻어있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이 보인다.


원의 사랑은 맹목적이지는 않다. 먼발치의 사랑이다.

사랑이 좀 더 풍족하다고 넘치게 주거나 부족하다고 칼같이 차단하는 일회성의 사랑이 아니다. 부모의 사랑과 같은 모습이다. 반지름의 길이가 r인 한 원 위의 모든 점까지의 거리는 중심에서 일정하다.


나에게 원은 부모의 사랑으로 이어진다.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한결같음이다.


 현실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환경의 자식이나 능력이 있는 자식 그 누구에게 주는 사랑의 모습과 그때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같다.

    

수업 시간, 학생들에게 원에 대한 나의 사랑과 애착을 표현한 적이 있다.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는 찬사와 함께. 원의 먼발치에서의 사랑에 대해, 대부분은 아름답다며 감동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던 한 학생이 묻는다. 연인 사이에서도 원의 사랑이 적용되는지. 연인 사이에서의 사랑은 한결같은 사랑을 적용하거나 먼발치의 사랑을 얘기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그 사랑은 불타올랐다 쉽게 꺼지기도 하고 희미한 불씨만이 존재했는데 특별한 계기로 어느새 활활 타오르기도 한다. 그런 사랑은 다항함수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학생은 다시 원의 방정식에서 중심이 변하는 평행이동으로 예를 들어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얘기와는 다르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한결같다던 원의 사랑이 왜 변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평행이동은 원의 중심이동, 자리 이동을 말한다. 반지름은 변하지 않는다. 중심의 이동은 사랑이 변한 게 아니라 대상이 달라진 거뿐이다. 사랑의 크기나 사랑 자체가 사라져 버린 게 아니라 시기에 따른 대상이 달라진다는 거라 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어릴 때는 부모님과 가족을 향한 사랑이, 커가면서는 그 대상이 친구로 다음은 배우자로 그리고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나의 사랑은 적절한 시기마다 그렇게 대상이 변했으나 사랑의 색깔이나 크기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다시 기준을 부모님으로 가져가 본다. 매 순간의 부모의 사랑은 아가페적이지만 절제되어 있다. 마음보다는 훨씬 절제된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며 주는 사랑.

     

부모의 사랑을 대신해서 원의 방정식이 대표적으로 떠오른 건 원의 중심에서 원 위에 이르는 일정한 거리인 반지름을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나 한결같은 사랑, 적당한 거리에서의 먼발치의 사랑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원의 방정식 (x²+y²=r²)을 좌표평면에 그려가며 먼발치의 일정한 사랑을 떠올리며 찬사를 보낸 지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

     

20여 년 전 좌표평면 위에 원을 그려 넣으며 우연히 알게 된 사랑. 모성애, 조금 다른 색깔의 부성애. 그때부터 그곳에 넘쳐나는 사랑 에너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재고 따지기 전에 믿음으로 보여준 한결같은 부모의 사랑이 떠오른다.


지금까지도 멈추지 않고 변하지 않은 주는 사랑, 드러내지 않은 먼발치의 사랑이 원의 모습과 쌍둥이 별자리처럼 데칼코마니를 이루며 더 강한 빛으로 반짝인다.


x²+y²=r²

(x-a) ²+(y-b) ²=r²



sep. 04. 2022

올린 글 <원의 방정식에서 두 점 사이 거리(사랑)를 찾아내다>의 글과 연계해서 읽어도 원의 사랑을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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