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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Jun 02. 2023

누군가를 온전히 알고 있다는 착각

견뎌준 그녀가 참으로 대견하고 감사하다

감정 분리가 쉽지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를 먹는 걸까? 어느 순간 나에게는 잔인했던 봄에, 여지없이 감정적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할 만큼 많은 일이 있었다. 감정적 분리, 더 이상 소비하기 힘든 감정의 독립은 그렇게 긴 연습을 해도 쉽지 않다.


 과거부터 나에게는 잔인했던 봄을 이번에도 크게 앓아야만 하는 것인지. 내게는 엄마의 암 소식과 함께 독서토론 모임에서의 '회의'라는 단어가 몰려와서 남아 있는 시점까지... 두 달쯤 감정 소비로 아팠던 마음은 결국 육체로 옮겨져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위가 좋지 않아서 약을 금하고 있었기에 점차 안 좋아지더니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서야 위를 보호하는 위장약을 두  섞어서 새로 처방해 준 약을 먹기 시작했고 일을 하는 것 외에는 잠으로 며칠간의 시간을 보냈다. 그때쯤 과거 수업을 했었던 제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녀 귀에 들리는 전화기 저편에서의 소리를 확인하고서 전화를 바로 끊으라고 했다. 목이 아픈 선생님을 배려해서.


주혜는 그런 학생이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다. 지금은 서른이 넘은 주혜가 가끔은 내 보호자보다 더 따끔하게 스스로 자신을 돌보라고 사랑스러운 잔소리를 하곤 한다. 곧 좋아질 거고 선생님이 나으면 전화하겠다는 문자를 남기고 다시 잠을 청했다. 든든하고 아프고 고맙다.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오후에 톡이 울리더니 도라지 배즙이 택배로 배송된다는 카카오 선물하기 알림이 울렸다. 그녀는 왜 이렇게 감동을 주고 나를 울리는지. 나으면 곧 연락하리라 다짐하고 그 순간은 마음만 감사히 받았다. 스틱으로 된 배도라지 건강 스틱을 먹으며 새삼 그녀가 다시 떠오른다.




그녀의 학창 시절 수학을 가르쳤던 나에게 멘토라고 의지하며 기대었던 아이, 혼자만의 길고 긴 터널을 나오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녀는 이제 서른이 넘어서 내게 든든히 이런 감동을 안겨주기도 하고 오히려 나를 의지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십 대 중반부터 급격히 나빠진 시력으로 그녀가 훨씬 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씩씩하고 단단했다. 그러면서, 주혜는 아팠다. 나의 세상에서 보다 훨씬 더 아팠으리라. 많이도 아팠다. 그녀를 대부분 안다고 생각했던 나는 사실 그녀의 깊은 아픔에 대해서는 최근 그녀를 만난 후에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오만하며 위선이었던가. 그 깨달음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작을 열어줬다.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그녀는 여전히 씩씩하게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그 시간을 무심히, 덤덤히 얘기한다. 그리고 표정에서 그녀의 밝은 진심을 읽었다.


웃으며 씩씩하게 감정적, 사실적 입장에서 전한다.  아이들의 시선 괴롭힘. 학년이 오를 때마다 친구를, 사람을 믿으려고 했던 그녀, 사람의 관계에서 믿음을 기대했던 거 같다. 새 해가 밝으면 그녀는 항상 그러한 소원을 내비쳤다고 한다. 물론, 그녀는 지금도 사회적 관계 속으로 나아가려, 들어가려 애쓰고 있다. 과거보다는 좀 강해졌고 더 여유로워졌지만 아프고 또 아팠던 그 세월 동안 다져온 단단함이 있었기에 가능해진 건 아닐까.


그 친구의 아픔을 들여다보며 그녀의 세계에 일부 속해 있는 내가 보인다. 나의 오만함이. 단지, 그녀가 너무나 씩씩하고 단단하게 이겨 냈음을 그렇게 해 주었음에 감사하다. 


다시 반복적으로 든든하다고 했다. 내면에 감춰진 그녀의 아픔에는 무게를 싣지 않았던 거 같다. 나는 어쩌면 내면에 감춰진 그녀의 아픔에는 집중을 해 못하고서 그녀를 다 아는 거처럼 늘 응원의 트나 '믿는다'라는 인사성 짙은 말로 그녀의 건너편에서 타자와 함께 그녀를 아프게 해왔는지도 모른다.


긴 시간 동안 경험이 많았다는 것은 이해심이 많아지는 것일 수도, 역으로 두려움이 산처럼 쌓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두려워하는 자신과 마주할 때면 뛰는 심장이 더 강하게 와닿는다. 때로는 온몸으로 혈액을 타고 영양뿐만 아니라 그때의 감정까지 운반을 해 주니 아픔이 고스란히 자리 잡는다.


인간인 나는 무엇보다 강하다고 믿었던 나의 감정과 의식이 미물보다 나약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연과 환경의 변화로 찾아오는 몸의 변화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보여준다. 요즘 그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녀는 누구보다 아팠지만 강했다.  아픔을 딛고 잘 일어섰으며 지금도 아픔에 놓인 자신의 길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젠 진심으로 장애인이 가야 할 방향을 잘 잡고 중심을 잃지 않는다. 안내견 주미와 굳건히 걷던 길을 차분히 걸어간다.


여전히 그녀의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며 에너지를 전한다. 감사와 사랑과 아련함, 그리고 믿음의 환호를 보낸다.



어여쁘지만 단단한 주혜가 운영하는 채널 주소를 올립니다.

그녀가 걷고 있는 길의 걸음을 응원합니다.

https://youtube.com/@Yangju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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