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 한소 Sep 30. 2023

궁리와의 인연_시작

상실은 다시 시작하게 하는 새로운 힘입니다

지난 몇 개월의 만남을 통해 의견과 글이 오고 간 후 마침내 8월 출간 계약을 했다. 마음은 떨림이 더 큰 설렘으로 요동친다. 궁리와의 인연은 꽤 길었다고 할 수도 있고 아주 짧은 찰나이기도 하다.


궁리가 나에게 다가온 순간은 아주 짧은 찰나. 도서관에서 책을 선별하고 있었다. 이미 내가 선택한 책은 정했지만 잠시 쉬어가기를 원했던 뇌가 명령하고 있었나 보다. 수학, 과학 책을 집중해서 바라보다 책 제목이 처음엔 아주 거슬렸고 그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짧은 제목에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계획에 없던 책을 집어서 힘주어 꺼냈다. 삶과 인생에 대해 고민을 해왔던 터라 술술 읽혔다. 이미 오래전이었다. 내가 쓰려고 했고 관심이 있었던 , 그 속에서도 관계를 고민하며 인문학적으로 접근해서 풀되 그 장치, 재료를 수와 수학에 있다고 생각하며 글을 썼고 준비해 왔다. 


[인생도 미분이 될까요]를 읽으며 사실, 맥락과 추구하는 가치는 비슷한 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내 글은 위로가 필요한 타자와  삶의 아름다움을 나누고 그러한 삶으로부터 위로받기를. 우리의 내일을 풍요롭게 하고 그것을 깨닫는 순간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책에 관심을 두며 문득 '궁리'라는 출판사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고 의미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출판사와의 인연을 꿈꾸며 글을 정리하고 기획해서 꼭 투고를 해보리라는 야무진 각오가 있었다.


궁리(窮理)’라는 이름은 『중용』의 “배우고 익히는 데 궁리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궁리의 요체는 모름지기 책을 읽는 데 있다.” ‘爲學之要 莫先於窮理 窮理之要 必在於讀書’라는 대목에서 온 것입니다.


문득 출판사의 소개글에서 위의 문구를 읽으며 궁리와 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꼬인 위치라 생각하며 만나려고 애쓰지 않았는지 출판사와 독자의 관계로만 지냈다면 이제야 내가 출간할 책에 대한 답을 듣고 싶었다. 내가 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위로를 해 줄거라 믿으며 진심으로 쓴 내 글을 마음으로 읽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지나온 시간, 기억 속에는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관계만이 현재의 나를 있게 한건 아니었다. 오랫동안 함께해 온 수학은 나의 많은  부분에 침투해 있었다. 삶과 죽음, 경제, 관계, 사랑, 가치, 이제는 자아 찾기까지. 덕분에 풍요로워졌다. 감정도 감각도. 지금이라도 풍요로움을 스스로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가끔 푸른 하늘이 좀 더 선명하게 내 시선에 각인될 때, 시선을 창밖에 두고 아이들에게도 말한다. 여러 경험과 연륜 이전에도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그래서 우리는 수학을 해야 한다고.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되는 말과 언어로. 때로는 거부하는 관심사이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가치나, 사회적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끊임없이 되묻는 누군가에게 수학이 정답을 알려줄 수는 없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좀 더 풍요로워 지리라는 믿음이 있다.


상실을 겪은 이후 마법같이 궁리를 만났다. 맘으로 간절히 그리던 곳, 드디어 궁리를 찾았다. 그리고 궁리와 나는 꼬인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게 찾은 궁리는 내가 다가갈 때의 시간보다 더 급히 나를 끌어당겼다. 인연이라는 것. 세상의 여러 인연의 관계. 주변 관계를 그렇게 나의 방식대로 그리고 궁리의 패턴으로 살펴본다. 


천천히 궁리를 익히는 중이다. 궁리가 스며들고 있다. 어쩌면 궁리가 크지 않아서 안도했는지 모른다. 때때로 궁리가 무심한 듯 내게 다가오기도 한다. 한줄기 빛이 뭉친 내 기억들을 풀어서 세상으로 비춰주리라 믿는다. 궁리와 함께라면 가능하리라.

가능하리라는 꿈을 꿔본다. 궁리는 내가 좀 더 자조적으로, 독립적으로 걸어가며 영역을 지키게 한다. 세계를 나누어 침범하지 않으려 시선은 1/3, 관심은 2/3를 가리고 있다. 천천히 나의 세계에서 궁리의 패턴으로 잔잔히 스며드는 중이다.


앞을 바라보며 천천히 궁리의 속도에 맞게 때론 내 걸음에 맞춰 함께 걸어갈 뿐이다. 턱턱 숨이 막히는 여름 습도를 걸어가는 직선으로 끌어당겨 함께 걸어갈 뿐이다. 곧 궁리와 마주한 평행선에서의 가을을 마주하리라. 그 순간을 다시 떠올려 글을 쓰며 궁리가 존중한 독립적이고 자조적인 내 글과 패턴에 집중해 본다. 가을을 만끽할 순간과 닿을 그때를 떠올리며.

작가의 이전글 수학 토론에 퐁당_들어가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