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
순간과 찰나가 연속되어
나도 너도
이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우린
그렇게
이렇게 살아간다
불현듯 소멸에 대해
모두 거쳐야 할 소멸에 대해
두려움과 절망으로
주변의
사랑하는 것의
무관심한 것의
소멸
현실에서
육체에서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현재에서
미래로
견뎌야 할 것이
넘친다
이 순간 넘침이
무한의 넘침이
무기력으로
빠진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다
새로운
에너지로의 전환
소멸은 사라짐이
소멸은 단절이
소멸은 '무'의 세계가
아님을 깨닫는다
에너지의
공간의
시간의
또 다른 전환
또 다른 침입자
복잡한 생각과 맘을 정리하는 나의 방법 중 한 가지는 책꽂이를 정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을 찾아 훑어보며 재독을 한다. 그 과정에서 곳곳에 끄적끄적해 둔 메모를 발견하기도 한다. 오늘 새벽엔 2년 전 써두었던 메모를 발견했다. 그 시간으로 돌아가 본다.
코비드 19로 지금과 같은 세계, 세상과의 단절이 있기 몇 개월 전 아빠께선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소멸해 버렸다.
긴 글로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것을 표현하기엔 내 생각이나 글이 너무나 진부해서. 글이 빛을 잃었다. 끄적끄적해 둔 그때의 글을 발견했다. 빛은 희미하지만 소중한 감정으로 채워진 글이다. 단어로 또 긴 호흡으로 된 감정을 풀어둔 곳곳에 흩어져 있던 메모를 챙겼다. 시로 꾸며진 그것들을 모아서 울긋불긋 가을을 포장했다. 가을 포장에 마음을 온전히 고스란히 담아 본다. 딸과 관계회복을 끝내하지 못하고 세상과 단절한 체 소멸해 버린 아빠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순간이다. 시를 정리하며 달아나듯 도망치는 가을 담는 시간을 가졌다.
아빠에겐 단절이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진행 중인 현재. 그것은 관계회복에서 마음 정리가 안 된 내 위안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