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경험하고 있는 시작과 끝 '0'의 경계를 대입해도 이해되리라. '0'은 존재하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나 생각의 전환 변화의 기준이다. 운동 방향을 바꾸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프레임 안과 바깥에서 서로를 향해 걸어가는 시작과 끝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시작은 곧 마무리를 해야 하는 끝이 되기도 하며 끝맺음은 다시 새로운 시작이 되기도 한다. 우영이 그랬듯이 아이들은 삶에 스민 수학을 탐구하고 이해하며 한 뼘 더 성장하고 깊어지리라.
먼발치에서 한결같은 박수와 응원, 그리고 자극을 주는 수애와 서로를 견제하고 경쟁하나 각자의 창의적, 깊이 있는 사고를 지지하는 친구가 함께하는 <수학 토론에 퐁당> 동아리가 있기에 그들은 이제 시작했고 변화할 수 있다.
->이어서
우영과 윤이는 학교 친구들이 한걸음 걸어갈 때 쉼에 대해 그리고 과거와 미래가 연결됨을 그들의 방법대로 수학 동아리에서 증명해 보이려고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물론 그 노력은 입시 위주로 되어버린 공교육의 학교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그들이 하는 노력은 동아리 유지를 위한 큰 걸음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 걸음을 함께 해왔기에 우영은 윤이가 지닌 신념을 넘어서서 그녀를 신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애와 윤이는 서로를 귀하게 느껴졌던 시기에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안쓰럽게 생각했었다. 그사이 우영의 질투가 사람 마음을 시험했고 이후 자신이 많은 것을 의지하는 선배 윤이가 존경하는 수애를 향한 눈빛은 우영에게 전해지며 존경하는 마음 이상으로 경외하게 되었다. 수학을 향한 수애의 열정과 사랑 그 사이에 존재하는 관심과 시선을 그녀의 자리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겨울이 여전히 봄에 밀리지 않으려고 애쓰던 어느 이른 봄, 도서관에서 나온 윤이가 터벅터벅 밤길을 걷고 있다. 우영은 윤이의 뒤를 쫓아 걷고 있었다. 목적 없이 걷던 윤이의 발걸음이 갑자기 일정한 빠르기로 변해 있었다. 또한 좀 전에 걷던 노선과 완전히 달라졌다. 멀리 건물 하나가 보이자 윤이는 잠시 멈춰 섰다 다시 움직여 그곳으로 들어갔다. 우영은 윤이가 가려던 목적지를 잘 알고 있다. 그곳은 겉으로 보기에 문이 굳게 닫힌 수애의 학원이었다. 다행히도 윤이가 힘없이 열었을 때 절대 열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빗장이 풀리듯 문은 의외로 가볍게 열렸다. 우영은 윤이가 학원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잠시 망설였다. 자신은 학원생도 아니고 자칫 윤이를 미행한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었기에 계단에서 생각과 함께 멈춰버린 걸음은 10분을 넘게 그녀를 꼼짝 못 하게 잡고 있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갈등에 고민하던 찰나 계단으로 누군가 올라온다. 빛에 씐 어둠에서 수애의 모습이 보였다. 계단을 오르는 수애를 보며 우영은 안절부절 어떤 태도와 조치를 취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생각이 많았다. 수애가 경계를 풀고 선뜻 먼저 말을 건넨다. "학생, 우리 이전에 만나적 있죠? 윤이와 함께 인사 나눈 적... 나를 찾아온 건 아닐 테고 윤이를 만나러 왔어요? 윤이가 온다기에 집으로 가려다 떡볶이, 튀김을 사 오는 길인데 들어가서 함께 먹어요." 우영은 밀리듯 아무런 준비나 생각 없이 수애와 함께 학원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함께 들어가자 잠시 책상에 엎드려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윤이가 놀란다. 수애가 우영이 윤이를 만나러 온 거 같다고 하며 함께 떡볶이를 먹자고 분위기를 바꾸며 얘기했다. 함께 먹고 어울린다는 것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우영은 어색하게 행동했다. 그 어색함이 계속되는 가운데 수애가 얼마 전 선물 받은 토끼 한쌍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떡볶이 하나를 입에 넣고 몇 번 씹더니 마음이 급해 기다릴 수 없었는지 서둘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최근 선생님 생일에 지인이 암수 토끼 한쌍을 선물했어. 그 새끼 토끼 한쌍은 두 달 후부터 매달 암수 새끼를 한쌍씩 낳는다고 한다면 6개월, 1년 후며 모두 몇 쌍의 토끼는 되는 걸까? 사실, 이 생각을 하며 너무 놀라서 두 달 후 새끼를 낳은 후 암수토끼를 분리하던지 분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결심이지. 그냥 키우면 되지 하고 생각했던 나에게 그 수치는 경각심을 느끼게 했고 바로 실천까지 하려고 해. 그런데 여기서 토끼가 개체수를 늘려나가는 부분을 보며 우리가 공부한 수열이 보이지 뭐야. 1년 후 토끼가 몇 쌍이 되는지 바로 찾는 사람에게 원하면 분양할 생각이니 생각해 보고 나눠볼 수 있을까."
두 사람은 잠시 깊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수애는 침묵이 더 깊어져도 절대 방해하지 않는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서로의 생각을 나눴다. 두 사람이 나누는 에너지가 따뜻하다. 수애는 그곳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느껴졌다. 잠시 후 윤이는 우영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를 보냈다.
윤이는 우영에게 생각하고 의견을 낼 기회를 넘겨주었다. "제가 생각한 토끼 한 쌍은 다음 달은 그대로이며 두 달 후에 2쌍, 그다음 달부터 매달 암수 한쌍의 새끼를 낳으면 세 달 후에 3쌍, 네 달 후엔 5쌍, 다섯 달 후엔 8쌍으로 되겠죠. 그 개체의 쌍을 나열하면 1,1, 2, 3, 5, 8, 13, 21, 34, 55, 89... 의 규칙으로 증가하는 수열이 되고 이 규칙을 이용하면 1년 후의 총 토끼 쌍을 알 수 있겠죠. 이 수열은 많은 사람들이 들어본 적이 있는 '피보나치수열'입니다. 피보나치수열은 앞의 두 항을 더하여 다음 항을 구하는 수열입니다. 실 생활에서 살펴보면 주변에 피보나치 수열이 많더라고요."
윤이가 동아리 후배인 우영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수애는 우영이 정리한 내용을 들으며 장난스럽게 토끼 분양을 약속한다고 자신도 짐을 덜었다고 조금 과하다 싶을 만큼 우영을 칭찬했다.
우영은 간식을 먹으며 수애가 이야기해 준 반려 토끼를 실례로 듣게 되자 어쩌면 수학이 생활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가까이 바로 곁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름 지금 순간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간식타임이 끝나자 각자 마시고 싶은 차를 한 잔씩 챙겨서 편안한 자리에 앉았다. 수애는 좀 전까지 듣고 있던 조용하고 밤에 어울리는 음악이 아닌 웅장한 음악을 틀었다. 윤이가 수애를 향해 노래 선곡의 이유를 묻자 지금 윤이의 심정이 정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선곡했다고 무심히 말을 뱉었다. 음악은 리듬에 따라 선율이 움직이고 그 리듬에 묘하게 위로가 된다. 우영이 음악에 푹 빠져 있을 때 수애는 처음부터 다시 들려주며 이 음악에 숨어있는 규칙을 한번 찾아보라고 제안했다. 베토벤의 < 5번 교항곡 운명>에는 어떤 수학적 규칙이 숨어 있을까.
숨어 있는 규칙을 꺼내 두 사람에게 수애가 전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늦은 밤 어울리지 않은 웅장한 음악, 그리고 묘하게 위로받는 두 사람, 수애는 곡에 숨어 있는 규칙을 알고 있기에 윤이에게 크게 닿을 거라, 응어리졌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리라 기대하며 리듬을 타고 흐르는 곡에 점점 더 집중했고 이내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