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 한소 Nov 02. 2024

삶의 평균 속도와 특별한 순간의 속도

미래를 예측하다

보기보다 씩씩한 모습으로 항상 스쿠터를 타고 다녔던 영성의 엄마였다. 두 눈에는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온 물이 고여있었고 깜박임이 있을 때마다 연신 눈물을 뱉어내고 있었다.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지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색깔을 잃은 입술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자신을 감추기도 드러내기도 딱 적당한 거리에서 수애를 보자 영성의 엄마는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애원했다. 진심으로 도와달라는 듯. 수애는 마치 곧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리는 영성이 엄마를 외면할 수 없어서 눈을 떼지도 못하고 앞으로 앞으로 걸어서 휘청이는 몸을 겨우 잡아줄 수 있다.


흐르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의 영성이 엄마가 수애 눈앞에 서 있다.


알 수 없는 말을 쉴 새 없는 뱉어내며 영성이 엄마는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의식을 부여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수애가 손을 잡자  널 뛰는 의식의 세계를 뛰어다니는 것처럼 아직 중환자실에 있을 영성이를 향해 한 번씩 고개를 돌리며 애써 마음을 잡으려고 했다.


얼마 전 일이었다. 수애는 스쿠터 소리를 들은 후 영성을 쫓아 도서관 1층으로 내려갔다. 멀리서 숨죽이며 엄마와 갈등하는 영성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 영성이는 평소 모습답지 않게 많이 흥분해 있었다. 엄마와의 불편한 대화는 몇 번의 큰소리 후 곧 끝났지만 널뛰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수애가 생각하기엔 영성이에게는 긴말 대신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느껴졌다. 수애는 바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교양 교실을 향해 갔다.


수애가 교양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친구들은 그녀가 잠시 나갔다 오기 전 나누었던 논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수애가 준비한 논제는 그녀가 머무른 좌표에서부터 영성 엄마가 시동을 끄고 잠시 멈춰 세운 스쿠터가 위치한 곳까지의 최소 거리에 대한 것이었다. 4층인 교양교실에서 스쿠터가 세워진 1층 도서관 앞 도로까지 이르는 그래프 중 직선거리와 곡선 형태로 된 사이클로이드 거리를 묻는 문제였다. 4층 교양교실에서 1층 스쿠터가 놓인 지점 사이의 거리에서 두 지점 사이 가장 가까운 최솟값을 구하는 것은 미분을 이해해야 가능하다. 수애가 친구들과 나누었던 것은 그 거리는 함수 그래프로 나타나며 미분을 이해함으로써 양을 찾을 수도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도 있다.


공간 어디 우주 어느 곳의 좌표를 표시하고 그것들의 자릿값을 나타낸 것은 데카르트가 발견한 좌표 덕분이었다. 평균 속도와 순간 속도에 대해 예를 들어 이야기해 보면, 서울에서 파주를 연결한 자유로 어느 지점과 지점 사이에는 평균속도를 지켜야 할 구간이 있다. 평균 속도는 전체 거리를 전체 걸린 시간으로 나누어 구할 수 있다. 평균 속도가 한없이 가까워지는 일정한 지점의 속도를 순간 속도라 하며 미분은 특정 시간에서의 순간 속도가 되는 것이다.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통해 거리의 최솟값, 최소 거리를 알고 있었다는 건 미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거다. 수애가 그 순간 알고 싶었던 건 누군가 끊임없이 왜 그런가? 또는 직선거리보다 더 가까운 건 어떤 움직임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수애는 그것이 우리의 일상과 크게 관계되어 있다고 믿었기에. 삶과 죽음의 긴 시간에서 우리가 움직이는 평균 속도가 아닌 특정 순간의 순간 속도를 친구들은 어떻게 구분하고 느끼는지 궁금했다.


수애는 영성이 누워 있는 응급실 바로 앞에서 영성이 던졌던 논제를 떠올렸다. "출발 지점이 같고 평균 속도가 같다면 스쿠터는 한결같은 속도로 도착 지점까지 움직이며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을까요." 말을 잇던 영성이 불안한 눈동자를 복잡하게 움직이며 거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교양교실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수애는 친구들에게 그 시간까지 나눴던 내용을 각자 알아서 정리할 것을 당부했고 영성을 쫓아 나갔다.


응급실 앞에서 타들어가는 마음을 기도로 겨우 붙잡고 있었던 수애는 그녀가 영성을 쫓아 내려왔을 때 영성을 설득해 함께 들어가는 게 옳은 판단이었을까 생각하며 자신을 몰아세우며 자책하기에 이르렀다. 영성이 있는 곳을 향한 멍한 시선은 곧 답답한 마음에 닿아 자신을 점점 궁지로 몰고 있었다. 바로 그때, 영성 엄마가 응급실 밖으로 다시 나오며 말했다. "영성이가 내가 너무 미웠나 봐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는지, 항상 괴로워했어요. 잠시 깨어서 나를 바라보는데 눈을 맞추기 힘들었어요. 죄책감에. 근데, 들릴 듯 말 듯 한 신음 소리로 겨우 미안하다고 하네요." 말을 이어가던 영성의 엄마는 잠시 멈췄다 다음말을 울음과 함께 뱉어냈다. 아빠가 회사에서 갑자기 퇴직을 권고받고 영성이네는 모든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때 동생은 자가면역 질환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환경이 중요했다. 생활에서 사소하게 신경 쓰고 관리할 것이 많았고 규칙적인 생활이 중요했다. 아빠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 엄마가 책임을 져야 할 가족의 생계와 동생을 돌보는 일에서 균형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한겨울 일을 나가는 엄마를 쫓아 나섰던 동생이 바이러스의 침투가 원인이었는지 감기에 걸렸다. 증상은 점점 심해지며 폐손상이라는 합병증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동생은 증상이 깊어졌고 거짓말처럼 가족 곁을 떠나게 되었다. 영성은 그 시간부터 엄마를 원망했고 미워했다. "영성이가 미안하다고 하는데 그 맘을 그대로 받아도 될까요. 죄 많은 엄마가... 영성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다 얘기하고 스쿠터도 없애려고 해요. 저 아이의 상처와 트라우마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당장 사는 일에만 집중했나 봐요." 그녀는 다시 두 손을 모아서 혼자 중얼거리듯 감사합니다를 주문처럼 반복했다. 그 감사합니다는 다시 수애에게 전해졌고 수애는 그녀의 고달픈 삶에 대해 뼈가 아픈 고통을 느끼며 병실로 옮겨진 영성을 자신이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처럼 의지로 뻣뻣해진 몸을 이끌어 병실 안으로 향했다.

 

'영성이는 스쿠터에서 떨어지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 순간 기절했다고 한다. 몸 다른 부분의 외상은 출혈에 비해 다행히도 깊은 상처는 없었다. 수애는 전문의가 말한 것처럼 영성이 바로 회복해서 곧 교양 교실을 찾을 수 있다면 다시 나눌 생각이다. 영성이 던진 스쿠터의 속력을 기나긴 우리 삶에 옮겨 삶의 평균 속력과 특별한 순간의 속력으로 찾은 삶의 기울기를.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아주 짧은 찰나로 나누어야 찾을 수 있는 특별한 순간 기울기를.

이전 27화 스쿠터 소리에서 들리는 삶과 죽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